오늘의 눈 맞춤
2021년 5월 22일, 오후 3시 20분
조금은 우울하고, 마음이 복잡한 날. 볼일이 있어 조금은 귀찮은, 짧은 여정을 떠났다가 돌아오려는 길.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약간 신경질이 났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하고, 복잡하고, 복잡했다.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14분 남은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데 문득 하늘이 참 맑다는 생각을 했다. 하늘 구경을 좀 하다가, 도로를 내려봤을 때 눈에 띈 시선유도봉. 앞에 똑바로 줄지어 서있는 다른 봉들과 다르게, 맨 끝에서 혼자 넘어져 있는 봉이 눈에 밟혔다. 왜 넘어졌을까. 무엇이 그를 넘어트린 걸까. 아니면, 그냥 누워있는 걸까.
넘치게 차있던 카드지갑을 정리했더니, 그새 헐거워졌는지 지갑에서 체크카드가 떨어져 버스를 타자마자 내려야 했다. 다행히 신호에 걸린 사이 누군가 밟고 있던(고의가 아니라고 믿는) 체크카드를 발견하고 주워 탈 수 있었지만 그 사이 끼워둔 현금을 잃어버렸다. 밥집에서는 소스에 소매가 젖었다. 동네까지 찾아와 준 친구들과 비즈 반지를 만들기 위해 챙긴 비즈 통에서 자잘한 비즈가 전부 섞였다. 좋아하는 은반지가 끊어졌다. 이런 자잘한 불운이 이어졌다. 마음도 소란했다.
마음 한구석에 도로 위에서 넘어진 봉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넘어져도 결국은 도로 위였던 그 봉은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학창 시절 자주 가던 물닭갈비 집을 갔다. 같이 간 사람들은 학창 시절에는 몰랐던, 새로운 인연들. 그 후에 향한 카페도 동네에 새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 집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먹은 치킨과 맥주. 동생과 시청한 유년시절 자주 보았던 만화 주인공들이 훌쩍 자란 마지막 이야기. 추억과 현재를 오갔던 오늘. 현재였던 순간이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 바뀐 게 참 많다.
다시 마음 한 구석에 그 봉이 굴러다닌다. 넘어진 나를 본다. 나는 지금 어른인가, 아니면 그냥 머물러있는 한 아이인가. 넘어진 그 봉은 다시 일어설까. 혹시 상처가 났을까. 내가 가진 수많은 흉터들과 아물고 있는 상처들, 그리고 새로 생긴 상처들도 떠오른다.
가끔은 넘어질 수도 있는 건데, 그 후에 남는 것들이 너무 오래간다. 결국은 아물 텐데. 넘어진 봉이 자꾸 마음속에서 덜그럭거린다. 너도, 나도 다음에 만났을 땐 일어서 있길. 바닥은 아직 조금 아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