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맞춤
2021년 5월 25일, 오후 6시 10분
동생의 택배 덕분에 아침 일찍 눈을 떴다가 다시 잠에 빠졌다. 이쯤 되면 오후에 하루에 시작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아침에 눈 떠봤다는 사실 자체로 만족하기로 한다. 이제는 기상시간에 연연하는 게 부질없다는 걸 안다. 늦게 일어난다고 하루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편의점으로 반값 택배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튀김이 갑자기 너무 당겼다. 고민했다. 이유는 곧 엄마가 퇴근할 테고, 엄마는 이미 전화로 오늘 저녁에 오징어볶음과 고등어구이와 소고기 뭇국을 해 먹자고 미리 알려준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입이 짧다. 튀김을 먹고 나면 분명 엄마표 저녁을 시원하게 먹지 못할 텐데.
그래서 타코야끼를 샀다. 타협점이었다. 반값 택배도 찾았다. 가는 길에 밑으로 길게 늘어진 나뭇잎이 부딪혀 얼굴이 간지러웠다. 키가 작아 이런 일도 있네 싶었다. 사이로 들어오는 볕도 좋았다. 바람이 서늘하고 공기도 청명하길래 집에 가다가 괜히 다른 길로 빠졌다. 산책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이 길을 걸어 본 지 꽤 된 것 같다. 내가 사는 동네인데, 분명 익숙한 길인데 왜 이리 낯선 기분이 들었는지.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꼭 탐험하는 기분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일상이 여행이 되는 기분은 언제 느껴도 짜릿하다. 하늘과 담장, 건물들을 눈에 꼼꼼하게 담았다. 집에 돌아올 땐 손에 떡볶이와 순대, 튀김 1인 세트도 들려있었다. 역시 튀김을 참진 못하겠다.
운 좋게 가족들과 시간이 맞아 사온 간식들을 나눠먹었다. 늦은 저녁으로 오징어볶음도, 고등어구이도, 소고기 뭇국도 모두 맛있게 해치웠다. 배부르고 평온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지난 새벽, 자기 전에 들었던 빗소리가 남긴 서늘함인가. 이렇게 차분한 마음으로 온 하루를 보낸 건 얼마만이지.
분명 내가 낮에 느낀 건 익숙한 새로움에서 오는 두근거림이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게 마음이 평온하다. 어제까지 소란했던 마음이 우스울 정도로. 이러다 또 금방 소란해지겠지만, 차분함이란 소란함을 위한 탄탄한 지지대. 내일의 내가 소란해지더라도 오늘의 차분함이 나로 하여금 길을 잃지 않게 붙들어줄 거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