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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May 28. 2021

붙었다 떨어진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5월 27일, 오후 5시 37분


 정신이 반쯤 들었을 때 기억도 나지 않는 꿈으로 다시 스스로를 이끌며 생각했다. 아, 오늘도 저녁에 가깝게 눈뜨겠네. 그리고 이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어제 조금 일찍 일어나 기뻐했던 게 무색하게, 바로 또 늦게 일어나다니. 사실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었다가 새벽에 깼을 때, 그대로 다시 잠들지 않고 동생과 치즈라면을 끓여먹는 순간 예견된 기상시간이었다. 동생도 치즈라면은 맛있었고 대가는 참혹했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잠들기 직전에 언뜻 비가 세차게 내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그 소리가 꼭 무언가 튀겨지는 소리 같아서 튀김을 또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결국 일어나서 먹게 된 건 토스트였지만.


 토스트를 사러 밖에 나가는데, 바람이 많이 차가웠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의 변덕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냥 매일매일 적응하는 일. 그리고 매일매일 변덕이 주고 떠난 선물을 찾아내는 일.


 지난번 산책에 이어폰 없이 나갔다가 주변의 소리를 많이 듣게 됐다. 꽤 괜찮았다. 그래서 오늘도 나갈 때 이어폰이 안 보이길래 그냥 나왔다. 귀에 들리는 게 없으면 어딜 다니지 못하던 내가 받아들인 또 다른 변화다. 세찬 바람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고, 바람 때문에 서로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 주변 행객들의 떠드는 소리. 세상의 소리.


 이 소리들의 장점은 주변을 더 살피게 해 준다는 것. 건물 곳곳에 남아있는 온갖 스티커가 붙었다 떨어진 흔적이 눈에 유독 밟혔다. 무언가가 붙었다가 떨어지며 남기는 것들이 참 짙는구나. 그 위에 페인트를 덧칠한다 해도, 아예 없애버릴 순 없겠지. 어쩌면 모두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었을 스티커들. 무언가가 왔다가 사라져 가는 흔적에 난 늘 이렇게 마음이 쓰인다.


 다시 하루를 반추하는 새벽. 빗소리가 크게 들린다. 이번 비가 가져올 건 또 뭘까. 눈뜨면 또 어떤 변덕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뭐가됐든 사람들이 덜 미끄러지고, 덜 젖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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