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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May 29. 2021

숙제 말고 치킨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5월 28일


 금요일, 밤마다 스터디가 있어서 이 스터디가 다 끝나면 일주일이 다 끝난 느낌이 든다. 미뤄둔 숙제를 다 해치운 느낌. 내일 원래 가야 하는 학원도 빼뒀고, 정말 마음이 느슨해졌다. 숙제가 하나도 없는 방학 전 날의 기분이다. 금방 다시 할 일이 쌓이겠지만, 일단은 이 해방감을 느끼고 싶다.


 엄마도 오랜만에 주말 출근이 없다. 한창 바쁘다가 이제 좀 잠잠해진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 밤, 엄마와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었다. 안주는 치킨이 됐다.


 공교롭게도 엄마와 원래 보려던 영화는 볼 수 없게 됐고, 대신에 이런저런 프로그램이 티브이에 멋대로 떠다니도록 두었다. 둘 다 얼음컵에 맥주를 한가득 따른 후, 잔을 부딪히며 이번 주 버티느라 수고했다는 말을 나눴다. 바사삭 거리는 튀김옷을 입은 치킨도 금방 사라졌다. 다음 주는 또 어떻게 버티지, 푸념하는 엄마에게 다음 주도 나랑 맥주 마시며 버티면 되지.라는 일차원적인 말만 건네는 나 자신이 조금 싫었다.


 친한 친구는 최근 가족이 치킨집을 열어서 그 일을 돕느라 새벽에야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오늘은 친구가 굉장히 바쁠 것이라고 미리 앓기도 했다. 바삭한 치킨과 시원한 맥주가 내게 어떤 보상처럼 다가왔다면, 그 친구에게는 또 다른 숙제 같았겠지. 농담으로 난 내일 치킨을 꼭 시켜먹겠다 했는데, 막상 진짜 시켜먹게 되니 친구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친구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숙제를 안겨준 기분이라서.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요즘 치킨은 맛이 참 많지만, 고민하다가 결국 시키게 되는 건 이 조합일 때가 잦다. 적당히 무난하고, 적당히 괜찮고. 새로운 맛에 도전하려면 실패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필요하다. 오늘은 그 여유가 조금 부족했고. 해방감이 곧 여유를 뜻하진 않는다는 걸 알았다. 숙제란 돌고 돌고 또 도는 것. 평생을 숙제와 살아야 한다니 조금 막막하기도 하고.


 버티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숙제가 조금 더 줄어들면 좋겠다. 해방감이, 여유가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나도, 엄마도, 친구도, 그냥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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