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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May 31. 2021

어느 오전의 꽃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5월 30일, 오전 10시 40분


 밤을 새웠다. 아침 일찍 약속이 있는 동생을 깨워줄 겸, 아침과 야식 사이의 치즈라면을 먹기 위해서. 전날에 하루 종일 잤다 깼다 반복한 탓에 올 잠이 동나기도 했고. 신선한 바람과 밝은 빛이 창 밖에서 집 안에 스며드는 걸 느끼며 꽤 기분 좋은 하루를 예감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오전에 깨어있는 기분은 낯설었다. 가족들이 잠들어 있거나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모습이 아닌, 갓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어색했다. 오전에 커피를 사러 가는 일도. 그래도 뭔가 굉장히 들떴다.


 오전의 햇빛은 쨍쨍했다. 거리는 의외로 한적했다. 카페의 직원분들은 분주해 보였다. 주말의 오전이 또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엄마와 내 커피를 달랑이며 집에 돌아오는데, 집 앞 도로 아주 좁은 틈에 노란 꽃이 옹기종기 모여 피어있는 걸 발견했다. 처음엔 살짝 보고 가려다 계속 눈에 밟혀서 돌아와 쭈그리고 앉아 사진도 찍고 무슨 꽃일까 추측도 했다. 민들레 같긴 한데, 혹시나 아니라면 꽃에게 미안하니까, 그냥 오전의 노란 꽃이라고 스스로 명명 내렸다.


 오전에 깨있는 덕분에 이런 꽃을 만났구나. 집에 도착해 커피를 달그락 거리며 마시는데, 행복했다.


 낮잠을 잠깐 자고 일어났다. 갑자기 파마를 한지 고작 두 달 되었지만, 머리를 자르고 싶어 졌다. 주기적으로 나는 머리를 짧게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고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매만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르고 싶은 머리 모양을 보내며 또 이 충동이 나를 찾아왔다 징징거렸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엄마와 함께 나가자! 하는 순간 비가 거세게 내렸다. 천둥이 지나치게 요란해 엄마와 둘이 겁먹고 다음으로 미뤘다.


 내일 약속에 가기 전에 잘라야지 생각하고, 엄마의 새치 염색을 도와줬다. 엄마 얼굴에 염색약이 묻어 점박이가 되기도 하고 깔깔 웃기도 했다. 나중에 귀가한 동생과 치즈 라볶이를 야식으로 먹으며 또 깔깔댔다. 시작한 시간이 다를 뿐인데 하루가 많이 길다. 날씨의 변화도 선명하게 느꼈다.


 내일도 같은 자리에 오늘 만난 꽃이 인사해주겠지. 그 꽃을 보는 내 기분도, 시간도 다르겠지만. 꽃이 오래 머무르다 갔으면 좋겠다. 길었던 내 하루처럼. 비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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