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그럭저럭

오늘의 한 끼_김치볶음밥과 달걀프라이

by 여느진

2020년 9월 23일, 오후 12시 14분


오후에 일과를 시작하는 나는 가족과 하루 중 밝은 시간에 같이 밥 먹기 어려운 편이다. 그들이 하루가 시작할 때 난 꿈나라를 여행하느라 바빠서. 오늘은 엄마가 드물게 오후 출근이라 함께 아점을 먹을 수 있었다. 꼭 저녁 같은 아점이었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 다른 가족들은 모두 요리를 잘하는데, 나는 영 솜씨가 없다. 나름 요리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려 냉동 김치볶음밥을 데우고, 그 위에 달걀프라이를 올리기로 했다. 엄마가 솜씨를 발휘한 반찬이 여럿 식탁 위에 올라와있었는데, 거기에 나도 뭐라도 얹고 싶어서였다. 결과는 당연히 처참했다. 분명 노른자를 반숙으로, 예쁘고 봉긋한 동그라미 모양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볶음밥 위에 올라간 모양은 아주 자유분방했다. 다시금 내 똥 손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엄마에게 프라이팬에 달걀이 눌어붙어 미안하다고 말하자 예상했다는 듯 무심하게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냉동 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그냥 데웠을 때 나는 특유의 수분기 없는 푸석한 쌀알의 느낌. 적당히 짭조름하고 적당히 작은 김치 조각들이 섞인 김치볶음밥 한 입. 너덜너덜한 달걀프라이를 숟가락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잘라내 한 입. 겉보기에 영 아니고 엉망진창인데 그럭저럭 익숙한 맛이 났다.


오늘 일을 하는 중간부터 엄청난 회의감이 몰려왔다. 스트레스를 알약으로 삼킨 듯한 하루. 영양제는 매일 몇 알씩 먹어도 효과가 눈에 띄지 않던데, 이 알약은 왜 이리 즉각적으로 그 효능을 보이는지. 집에 오자마자 맥주를 찾았다. 복숭아 맛 맥주의 빠른 진정 효과로 그럭저럭 불같은 하루가 소화됐다.


엉망진창이지만 그럭저럭, 또 하루를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