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소풍 가기

오늘의 한 끼_참치김밥과 헤이즐넛 아이스 아메리카노

by 여느진

2020년 9월 18일, 오후 12시 47분


눈이 시릴 정도로 하늘이 푸르고 둥실 떠있는 구름이 비현실적이었다. 커피와 김밥을 사러 다녀온 엄마가 햇볕은 뜨겁고 바람은 차가운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은 날씨라고 일러주었다. 열어둔 창 밖에 보이는 푸르름과 흘러들어오는 바람의 물결이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가을에 가까운 옷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소풍 가는 날 아침은 늘 고소한 냄새와 함께 눈을 떴다. 김밥용 갈색 햄과 계란 지단 굽는 냄새, 채 썬 당근을 볶는 냄새, 참기름과 맛소금에 시금치를 버무리며 나는 냄새. 모든 재료가 가지고 있는 냄새는 고소한 기름 냄새였다. 그 맛있는 냄새에 둘러싸여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씻고 나와 소금이 덜 풀려 군데군데 짠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김밥용 밥과 일정한 크기로 잘려 쟁반 위에 놓인 속재료를 몰래 주워 먹곤 했다. 나중에는 유부초밥이 소풍 도시락의 단골 메뉴가 되었지만, 아직도 내게는 소풍 하면 김밥이 먼저 떠오른다.


이제는 집에서 직접 김밥을 싸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훨씬 싸고 간편하고 빠르다는 걸 안다. 김밥은 소풍의 설렘보단 바쁜 일상에 효율적으로 배를 채우는 수단이 더 어울리게 됐다. 어른이 되며 먹는 김밥의 맛은 더 다양해졌지만, 감정은 좀 더 씁쓸해졌다.


시럽이 가라앉아있는 헤이즐넛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휘저으며 예전에는 김밥엔 오렌지맛 탄산음료를 먹곤 했던 사실을 떠올린다. 주황색에서 갈색으로, 조금 더 쓴 맛을 담은 음료로 바뀐 지금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길목에 느껴지는 서늘한 바람의 온도처럼,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문턱의 맛은 조금 더 차갑구나. 카페인으로 아직 나른한 몸을 깨우고, 교정 때문에 단무지가 빠진 참치 김밥 하나를 입 안에 밀어 넣는다. 마요네즈와 참치의 고소함 사이로 소풍 가던 날 아침 풍경이 스며 나온다.


얇은 니트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제법 매섭다. 대조적으로 하늘은 지나치게 푸르다. 햇볕은 따갑다. 조금 더 어린 내가 소풍 가는 날이었다면 좋다고 뛰어다녔을 그런 날씨. 일터를 향하는 택시를 타고 하늘을 멍하니 구경하며 오늘 먹은 김밥은 일상으로 가는 소풍을 위한 것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참 소풍 가기 좋은 날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