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국물에 풀어지기

오늘의 한 끼 : 참치김치찌개

by 여느진

2020년 9월 26일, 오후 2시 39분


술 먹은 다음 날은 얼마나 마셨든 일어났을 때 첫 느낌이 개운하지 못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챙겨 먹은 숙취해소제 덕분에 속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지만, 지끈거리는 머리는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전역한 동생이 근 일주일간 집에 잔뜩 쌓아둔 택배 꾸러미를 다 풀고 패션쇼를 한참 하다가 밖에 나갔을 때야 첫 끼니를 먹을 수 있었다.


택배 상자와 동생의 짐으로 초토화된 집의 사이사이를 채우는 건 익숙한 김치 볶는 냄새였다. 슬렁슬렁 주방으로 나가보니 가스레인지 옆에 김치통과 참치캔이 올려져 있다. 지끈거렸던 머리에 순식간에 내가 곧 먹게 될 익숙하고 맛있는 국물이 그려졌다. 활짝 웃으며 엄마 앞에서 신남을 표출했다.


김치찌개는 무슨 재료를 넣어도 맛있고 잘 어울리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참치. 이전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더 좋아했었는데, 갈수록 밥 위에 건더기와 국물을 한 숟갈 끼얹고 슥슥 비벼먹기 편한 참치찌개가 더 좋아졌다. 위장에 채워진 술병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건더기보다 국물의 맛을 더 깨우친 탓이 크겠지.


흰쌀밥 위에 여느 때처럼 국물을 끼얹고 참치와 작은 김치 조각도 얹어 비빈다. 뜨겁고 매콤하고 조금 짠 것 같기도 하고 왜인지 달큼함도 느껴지는 맛이 입 안에서 마음껏 뒹군다. 김치찌개를 먹는 날이면 다른 반찬이 있어도 이 과정을 더 자주 반복하게 된다. 오늘도 마찬가지고. 만만하고 익숙한 김치찌개를 먹으면 괜히 마음이 늘어진다.


짭짤하고 푸석이는 참치와 밥알을 넘기며 오늘 할 일이 뭐였더라 생각한다. 식사를 마치고 그냥 누워 인터넷 세상을 하염없이 떠돈다. 안방에 있는 침대 위에 누워 엄마의 자리를 빼앗고 괜히 앙탈도 부린다. 할 일은 점점 뒤로 잊힌다. 아무렴 어때. 잔뜩 풀어져 늘어져도 괜찮은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