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_양지차돌 쌀국수
2020년 10월 10일, 오후 12시 17분
내겐 아주 오래된 친구가 있다. 내 인연들 중 가장 오래됐고, 닮았고, 언제 봐도 자연스러운 친구. 반지랑 팔찌, 발찌, 생각해보니 목걸이도 한 번쯤 맞춰봤고 좋은 말도 많이 해주는 친구. 다른 지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편이라 보려면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보기 위한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운 요즘. 초등학생 때 만나 매일매일 붙어있다가 이사와 전학으로 인해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날이 하루하루 쌓여갈 때마다 서로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줄어들고 있다.
대략 한 달간 토요일 출근이 예정되어 있는 나. 이 때문에 오늘도 이 친구와 아주 짧은 만남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직접 만든 송편과, 티라미수 찹쌀떡,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포토카드까지 바리바리 싸서 전해준 친구. 그 마음도,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늘 하루 가장 기분 좋게 웃었던 시간을 선물해준 존재 자체도 정말 고마웠다.
오늘 우리의 만남을 빛내준 만찬은 양지차돌 쌀국수. 한때 이 쌀국수에 빠져서 퇴근하면서 굳이 돌아 혼자 쌀국수를 먹고 나오기도 했었다. 술 먹고 다음 날에 떠오르는 빈도도 잦고, 하트 모양 파가 자주 보여서 쌀국수를 먹으면 배가 너무 불러 아파도 기분이 좋다. 가장 좋은 점은 미리 끓여둔 육수에 면과 고명을 합쳐서 나오기 때문에 배고플 때 빠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 나는 주로 매운 소스와 해선장을 섞는다. 면과 고기, 숙주, 그리고 절인 양파를 볼에 덜어 소스에 먹곤 한다. 간간히 시원하고 깊은 국물을 삼키고 하트 모양 파를 찾아내면서. 다른 면요리보다 빠르게 비우는 편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빠르고 확실하고 따뜻한 음식이다. 종종 생각나는 은은한 중독성은 덤.
탑처럼 쌓인 고명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우리의 시간은 그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이후에 고양이가 드나드는 카페에서 맛있는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며 슬슬 출근이라는 현실을 준비해야 했다. 뜨거운 햇살과 그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출근하는 길. 든든한 속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빠르게 식어갔다. 버스 안, 유난히 파란 하늘을 내다보며 오늘 친구를 만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