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발로 토닥토닥

오늘의 한 끼_꽃게탕과 흑맥주

by 여느진

2020년 10월 20일, 오후 10시 34분


집에서 나갈 때와 집으로 돌아올 때,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 손에 들고나갔던 외투는 몸에 걸쳐지고, 살짝 덜 마른 채 늘어진 머리는 대강 묶여있기도 하고, 워낙 신발끈을 잘 못 묶는 탓에 몇 번을 풀어지길 반복한 매듭은 문 밖을 나설 때와는 다르다. 비슷하지만 다른 나를 다시 집으로 올 때는 조금 더 많은 짐이 추가된다.


새벽까지 한 번에 우체국 갈 일을 처리하기 위해 벌여둔 것들을 수습했다. 귀찮아서 더 큰 귀찮음을 감내하는 내가 웃기면서도 끝까지 마무리했다. 늦게 잠들어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나 빵 반쪽만 대강 입에 물고 바쁘게 우체국까지 달려갔다가 출근하고 또 일을 하고. 하루가 너무 빨라 배고픔도 잘 못 느끼다가, 얼굴이 보고 싶다는 술 취한 아빠의 전화를 받고 뭐야 하면서 살짝 웃었다가,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서야 허기짐이 밀려왔다. 모든 것이 산만하게 지나가 정신 차리기 어려웠는데, 그 사이 내게 더해진 것이 많았는지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잔뜩 지쳐 문을 나설 때의 생기를 잃고 맥주를 덜렁이며 들어온 날 반겨준 건 엄마표 꽃게탕. 사실 난 생선 말고도 다른 해산물들도 잘 발라먹지 못해서 해물탕은 가족과 함께가 아니면 밖에선 먹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음식이었다. 비로소 내가 퇴근했구나 실감 났다.


무와 쑥갓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맑고 시원한, 그리고 은은한 단 맛이 맴도는 국물. 겉보기엔 빨갛고 고춧가루도 들어가 텁텁할 것 같은데, 굉장히 깔끔하다. 무와 쑥갓을 한꺼번에 떠올려 밥 위에 흩뿌린 후 잔뜩 비벼먹는다. 그 사이 엄마가 손질해둔 꽃게의 뽀얗고 탱글한 살이 쌓인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엄마의 배려 하나로 숟가락으로 편하게 퍼먹을 수 있게 됐다.


늘 먹는 맥주가 없어서 집어온 흑맥주는 가게에서 마실 때와는 영 달랐다. 캔에 들어서 그런가, 쇠맛이 느껴지는 것도 같아서 몇 입 더 마시다 그만뒀다. 그래도 알코올이 들어가니 마음이 늘어진다. 입에 남아 있는 흑맥주 특유의 쌉사래함이 개운한 것도 같다.


이렇게 누군가의 배려와 아늑함을 잔뜩 퍼먹고 나니 눕고 싶어 진다. 내가 배려해야 하고, 기민하게 움직여야만 하던 밖과는 다르게. 그릇 밖으로 튀어나온 꽃게의 집게가 내게 수고했다 토닥여준다. 내가 몰고 들어온 세상의 짐을 같이 들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집게가 내게 내밀어질 수 있는 건 그 뒤에 숨겨진 수고스러움 덕분임을 안다. 다시 내일, 새로운 짐을 끌고 올 준비가 됐다. 내려놓기, 바로 그 준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