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무거워

오늘의 한 끼_야채 감자 크로켓과 바닐라 콜드 브루 라테

by 여느진

2020년 10월 22일, 오전 11시 53분


날이 흐리다. 창문에 눌어붙은 물자국이 빗물 자국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흐렸다. 구름은 작은 물방울이 무리 지어 떠있는 거라고 하니까 사실 마른하늘은 늘 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봐도 괜찮지. 그니까 오늘의 하늘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요즘은 출근 전에 커피를 사 먹지 않는다. 가족들도 다시 바빠져서 내게 커피를 사다 줄 수 없기도 하고, 콜드 브루 원액이 있어서 굳이 사 먹으러 나갈 필요가 없어지기도 했다. 혼자 내 길쭉한 개인컵에 얼음을 덜그럭 쏟아붓고, 기분에 따라 라테용이나 아메리카노용 원액을 넣고 우유나 물을 일정 비율로 섞어 다회용 빨대로 슥슥 저어주면 끝. 따로 주문한 헤이즐넛 시럽도 넣어먹는다. 아침에는 대게 바닐라 라테를 택한다. 홈카페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카페인이 있어야 하루 종일 그나마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나를 내가 챙긴다.


오늘 홈카페 메뉴는 바닐라 라테와 야채 감자 크로켓. 튀긴 빵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크로켓은 예외다. 바삭한 겉에 촉촉한 속. 특히 안에 감자가 들어간 크로켓은 감자 샐러드를 바삭한 식감으로 즐길 수 있어서 더 좋아한다. 뜨끈하게 데운 후에 차가운 커피와 함께 먹으면 하나만으로도 속이 든든해진다. 손바닥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빵이 안에 담고 있는 것이 꽤 많다. 노트북 책상 앞에 앉아 화면 속 활자를 훑어보며 먹는 하루의 첫 끼가 무겁다.


내 안에 들어있는 게 많다. 책임감, 카페인, 부담감, 서운함 등으로 소화시킬 것이 너무 많다. 내 안이 텅 빈 것 같다고 느낀 게 얼마 되지 않는데, 이렇게 가득 차있는 기분을 느끼니 또 버겁다. 나는 딸이기도, 누나이기도, 친구이기도, 후배이기도, 선배이기도, 누군가의 직원이기도,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기도, 누군가와 스쳐가는 사람이기도, 그리고 나이기도 하다. 내가 쥐고 있는 역할들이, 조금 묵직하다. 하나씩 놓아버리고 나만 남겨둘 순 없을까. 그러면 크로켓 안에 속이 텅 빈 것처럼 남는 게 없어질까?


내가 담고 있는 것들도 언제든 터질 준비를 하고 있다. 여러 재료가 섞여 튀겨진 크로켓이 맛있는 것처럼, 그저 터졌을 때 행복한 맛이 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