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인데 어디다 둬야할지
내것인데 내게 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인데
어디다 둬야 할까. 내가 내려두고 싶은 곳은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고, 내가 내려놓고 싶지 않은 곳은 큼지막하게 자리를 열어 놓고 여기 오라하고. 어디다 내려놓지 않아도 내 마음은 내가 잘 중심잡고 지니고 있으면 되는 것을.
남들에게 친절한 것 만큼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자는 말이 있다. 우리가 남에게 친절을 베풀 때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 친절을 베풀면 논쟁이나 투쟁이 없으니 부드럽고 편안한 연속성을 위해서 친절하라고 하는 것일까. 요즘은 그리 친절을 과하게 베푸는 것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그저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오지라퍼라는 소리도 듣기 싫어한다.
언젠가에는 우리 국민 모두가 외향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면 같은 골목에 사는 사람들끼리 저녁을 나눠 먹고 이사 떡을 돌리고 저녁에 찌개 끓였다며 작은 냄비에 김치찌개를 담아내어 주고 나중에 빈그릇을 돌려 주며 찐 고구마라도 담아 그릇과 함께 보냈었다. 나는 이런 생활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늘 그립다. 사실은 어릴 때도 직접 이러한 상황을 경험한 적은 없다. 드라마에서나 시대극에서나 보아왔던 일이다. 그런데 그런 따뜻한 삶이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삶이 늘 그립다. 마치 나의 무의식에 그런 생활속에 살다가 내가 다른 별나라에 떨어져서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듯한 느낌이다. 자꾸만 외롭다.
내가 마음을 닫고 있어서 그렇단다. 그래서 외롭단다. 마음을 열면 도데체 얼마만큼 열어야 하나. 나는 적당히 열줄을 모른다. 열면 활짝 열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영영 닫아버린다. 바람의 길이 통하는 만큼만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제안한다. 그렇게 그만큼 열어놓는다해서 나를 무시하지도 무시 당하지도 헤퍼보이지도 측은해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밝고 경쾌해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이 더 호기심 가지고 궁금해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옭아매지말자.
이렇게 저렇게 어우러지자. 나는 내가 영원할 줄 아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