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도된다
고집, 욕심, 집착이 나를 지켜준 방식
— 단단함과 따뜻함 사이에서 나를 발견하는 시간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너는 너무 고집이 세다.”
“욕심이 많다.”
“어디에 한번 꽂히면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나는 오랫동안 이 말들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마치 잘못된 성향을 고쳐야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조용히 탓해왔다.
하지만 몸이 아프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며 깨닫게 된다.
이 세 단어는 사실 나를 오랫동안 지켜준 힘이었다는 것을.
< 고집은 나의 중심을 지키는 뿌리였다 >
나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남들의 말에 금방 무너지지도 않고,
스스로 세운 기준을 함부로 버리지도 않는다.
그 뿌리가 바로 ‘고집’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성향처럼 보일지라도
나에게는 중심을 잃지 않게 해주는 방패였다.
고집이 있었기에
가정도 잘 지켜왔고
일의 압박 속에서도,
나는 나를 잃지 않았다.
고집은 단단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 욕심은 나를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엔진이었다 >
누군가에겐 “욕심이 많다”는 말이 질책의 말처럼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곧 성장 에너지였다.
더 배우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깊어지고 싶은 마음.
그 욕심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공부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욕심은 나를 끊임없이 확장시켰다.
욕심은 에너지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 집착은 ‘의미 있는 것’에 대한 깊은 전념이었다 >
나는 의미 있다고 느끼면
끝까지 파고들고,
놓지 않고,
끝내 완성하려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집착’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전념이라고 부른다.
어떤 관계, 어떤 공부, 어떤 연구 과제든
내 마음이 움직이면
나는 그곳에 진심을 다해 머문다.
그 전념은 나를 깊게 만들었고,
성숙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에게 진심인 사람’으로 살게 했다.
집착은 몰입과 충성된 마음의 다른 얼굴이었다.
< 세 단어는 결국 나의 힘이었다 >
고집, 욕심, 집착.
이 세 단어는 나를 괴롭히는 흠이 아니라
나를 살아 있게 해주는 핵심 에너지였다.
고집은 나를 지켜주었고, 욕심은 나를 성장시켰고, 집착은 나를 깊게 만들었다.
나는 이 세 힘을 이제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단단함.
확장성.
전념.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 강점을 ‘부정어’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었을 뿐.
< 이제는 이 힘을 ‘나를 위한 방향’으로 쓰고 싶다 >
내 고집은 남을 꺾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내 욕심은 타인을 누르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내 집착은 누군가를 얽매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모든 에너지는
나를 단단하게 세우고
내 삶을 정직하게 채울 수 있는 방향으로 쓸 때
비로소 아름답게 빛난다.
나는 이제야 알고 있다.
내가 가진 성향은 결코 결함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올바른 자리를 찾지 못했던 힘이었다는 것을.
<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다짐한다 >
나는 내 단단함으로 나를 지키고,
내 확장성으로 나를 성장시키고,
내 전념으로 내가 사랑하는 삶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타인에게는
따뜻함으로,
여유로움으로,
배려로 다가갈 것이다.
내가 가진 힘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나를 살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오늘의 나는
그 사실을 조금 더 이해한 사람으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