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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Apr 24. 2024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멈추고 싶을 때 읽고 싶은 문장


얼마 전 A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말을 했다. 책을 읽는 게 다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고. 내가 읽은 책들이 나의 인생에 어떤 도움을 줄지 모르겠다고. 나름 열심히 무언가를 읽으며 달려왔지만 그것들이 나에게 어떤 유익을 주었는지 알 수 없다고. '혹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진은영 시집을 다시 읽을 때면 잠시나마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신형철 평론가의 글을 읽으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온전한 존재가 되려는 힘이 강해지기 때문에, 삶이 부서진 어떤 사람에게 '예술적 자극'은 곧 '치유의 자극'이 된다는 것.


신형철 평론가의 글에 인용된 정혜신의 이 말이 나는 왜 이리 좋은 것일까. 아직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인생이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어쩌면 지난 오랜 시간 나는 치유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깨닫지 못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치유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맞설 힘이 없다고 느낄 때 나는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어떤 보상도 원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고 싶다는 듯이. 그럴 때면 늘 이런 문장이 장막을 거치며 나타나곤 하였다. 모든 것이 그저 신비로운 순간으로.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넘기지 못한 페이지>


4. 그리고 사랑과 예술도 하나


p.138 진은영이 높은 수준에서 통합하는 데 성공한 것은 '스피노자와 연애'만이 아니다. 그는 "좋은 시인은 잘 싸우는 사람이고 그의 시는 분쟁으로 가득한 장소"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의 시는 이토록 아름다워지는 데 성공한다. 이것을 분쟁과 아름다움의 통합이라고 해야 할까.


브레히트는 어디선가 '아름다움이란 어려움을 해결하는 '이고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행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은 분쟁을 진정으로 해결하는 돌파일까, 아니면 해결됐다고 믿게 하는 유혹일까. 브레히트의 말이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인지 냉소인지 오랫동안 헷갈렸는데 정혜신의 다음 말은  답을 비스듬하게 알려준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온전한 존재가 되려는 힘이 강해지기 때문에, 삶이 부서진 어떤 사람에게 '예술적 자극'은 곧 '치유의 자극'이 된다는 것. 그렇다면 아름다움(예술)은 인간을 '해결'하는 사랑의 작업이 되고, 그렇게 치유되면서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분쟁'과 다시 맞설 힘을 얻게 된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진은영은 그런 것을 가졌다.


- 사랑과 하나인 것들: 저항, 치유, 예술 ㅣ 신형철 -


* 브레히트, '무엇이 아름다운가?' '시의 꽃잎을 뜯어내다' 이승진 편역, 한마당 1997,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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