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 살로메 Jul 01. 2024

새벽과 음악

이제니 시인에게 

니스 샤갈 미술관을 추억하며


당신의 시를 처음 알았던 게 언제였을까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처음 당신의 시를 읽었을 때 당신의 시어와 시어와 시어를 따라가면서 나는 어디론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고는 하였습니다. 그 이상한 기분 때문에 당신의 시집을 여행지에 챙겨가고는 했지요.


<새벽과 음악> 나는 이 산문집을 조금 늦게 읽어 보았지만 당신의 글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아니 어떤 면에서는 고통스러워서 흐느껴 울기도 하면서 괴롭지만 소중한 그날들을 생각하였습니다. 무언가 홀린 듯 시를 써 내려가던 짧은 시간과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늘 담배 연기가 자욱한 늦은 새벽 카페의 좁은 공간. 어떤 말들 그리고 침묵. 하지만 도저히 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시간 같기도 한.


당신의 글을 읽으며 나는 어쩌면 내 예감대로 시를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닌, 이렇게 독자로만 남겨질 수도 있을 것이란 슬픈 생각들. 이토록 예리하게 시의 언어에 접근할 수 없다면 시인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조금 단호하면서도 냉정한 판단이 생겨나는 시간이었다고 할까요.


위로가 되면서도 편안하지 않은 마음. 그것을 다시 발견해 나간다는 것이 사람을 괴롭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느끼고 또 느꼈습니다. 그것들은 늘 왜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아픈 것인지. 왜 아름답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마치 당신이 말한 흰 빛처럼.


그런 복잡한 마음 가운데에 만약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이 한 권의 책을 가져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두려움 때문에 이 아름다운 문장을 자주 읽지는 못하겠지만 펼쳐보지는 못하겠지만 시를 모른다고 생각할 때마다 이 책을 꺼내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가장 가까운 문장이라고 생각한 듯도 합니다.


하지만 또한 그럴 용기가 없습니다. 어떤 날들은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살아지기도 하니까요. 몰라서 버티며 살아왔던 날들을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당신의 글을 읽고 나니 잠이 오지 않습니다. 시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영혼을 깨우는 문장들.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조금 버겁기도 한. 이상한 감정들.


시인은 타고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훔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당신의 글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글을 읽으며 어렴풋이 그것을 느낍니다. 당신의 신발에 붙어있던 죽은 나비의 날개 같은. 그 꽃잎처럼.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문장이 이곳에 가까이 앉아서.


이제 곧 아침이 오겠지요. 꽃잎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날아오르듯. 더 이상 어제의 빛이 아닌 그 빛이 다가오겠지요. 당신의 문장을 따라 나는 또 그곳으로.


Jóhannsson: Good Night, Day (youtube.com)


* 읽은 책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



p.64 너는 아주 작은 존재야. 너는 아주 작은 존재 그 자체로 크고 밝고 충만한 존재야. 어떤 목소리가, 어떤 멜로디가, 내 속에서 늘 배음으로 나와 함께 울어주고 있어서 나는 늘 무언가를 쓴다. 내 글의 첫 번째 독자인 나 자신에게. 그리고 가까스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나의 두 번째 독자인 당신들에게. 아프고 외롭고 작고 크고 밝고 충만한 사람들에게. 조금만 울고 한숨 자고 일어나 밥을 먹고 좀 걷자고.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으로 서로를 좀 더 잘 살아가게 하자고. 삶은 하나의 즐거운 놀이거든. 진지할 것은 조금도 없거든.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나아가는 것 자체가 네 아름다움의 증거라고. 그렇게 너와 내가 또 한 시절을 건너왔다고. 나는 이 모든 문장을 나의 음악 속에서 써 내려간다.


오롯이 나이면서 온전히 나 혼자만은 아닌 나. 내속의 다성의 목소리로서. 올가 토카르추크가 [다정한 서술자]에서 말했던 그 서술자와도 같은, 비비언 고닉이 [상황과 이야기]속에서 말했던 글의 목소리를 결정하는 페르소나와도 같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고독한 글쓰기]에서 얘기했던 바로 그 목소리, 글쓰기에 착수할 때는 자기 자신보다 더 강해져야만 한다고, 그리고 쓰는 것보다 더 강해져야만 한다고 할 때의 바로 그 목소리로.


그러니 나는 너이고 너는 모두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모든 것이고 편재하는 동시에 낱낱으로 구체적인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러니 어떤 멜로디는 어떤 울음은 어떤 이미지는 어떤 목소리는.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죽어가면서 반짝이는 그 모든 크고 작은 존재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죽어가면서 반짝이는 그 모든 크고 작은 존재들에 대해서, 그러니까 너와 우리 모두에 대해서, 무언가를 끝없이 말하고 있어서.


p.129 공작이 있다. 공작은 오늘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빛을 끌면서 걸어가고 있다. 하나의 영원처럼. 나는 그 공작 앞으로 다가가 구슬 하나를 굴려서 넣어준다. 어린 시절 그토록 꺼내고 싶었지만 꺼내지 못했던 바로 그 유리구슬을.


빛나라고.

같이. 더욱 빛나라고.


- 새벽과 음악 | 이제니 -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