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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Oct 27. 2021

당신얼굴 앞에서, 홍상수

In front of your face

순간 그녀의 시계를 보고 나의 시계와 같은 것인 줄 알고 반가웠으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홍상수 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그가 외도를 하기 전부터 매년 빠짐없이 홍상수의 영화를 보아왔다. 잠시 그의 도덕성 때문에 혼란이 오긴 했지만 작품은 그냥 작품으로 바라보기로 하였다. 그의 영화는 매년 가을 개봉을 하곤 하는데 그래서 그의 영화가 개봉할 때면 '아, 올 한 해도 이렇게 마무리되어가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올해 가을에도 그의 신작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를 극장에서 보았다.


영화의 플롯은 단순하다. 미국에서 갑자기 귀국한 상옥(이혜영)은 여동생 집에 머물며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영화감독 재원(권해효)과 인사동 술집 '소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에게 처음으로 자신이 6개월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왜 다리 밑에서 담배를 피웠을까?


상옥은 영화감독 재원에게 자신이 처음 죽으려고 결심했던 과거의 일화를 들려준다. 그때 상옥의 대사를 들으며 홍상수 감독이 이 영화에서 유독 '오버 더 숄더 샷'(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주인공과 대화하는 인물들의 뒷모습을 화면에 담아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상옥은 영화감독 재원과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당신얼굴 앞에 천국이 숨겨져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죽음을 앞둔 그녀의 모습에서 두려움이나 고통이 잘 느껴지지 않고 도리어 차분하고 어떤 면에서는 평온함이 전해진다.


김새벽 배우의 옷과 느낌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당신 얼굴 앞에 천국이 숨겨져 있다."


(영화의 의미와 상관없이) 상옥의 이 대사를 들으며 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는 불가능한 일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상옥이 정확히 어떤 의미에서 이 같은 말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녀의 대사를 들으며 나만의 '천국'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나만의 천국'은

나로부터 빠져나와 내 얼굴을 처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간과 공간이며

그곳에서 '나'의 얼굴은 '당신'의 얼굴이 될 것이고

그런 '나'는 내 안에 갇혀 지내던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의 '당신'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수많은 타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내 얼굴 앞에 설 수 없다.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내 얼굴 앞에 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얼굴 앞에서' 당신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건 고귀한 일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보지 못하는 당신의 얼굴을 대신 바라보면서 상옥이 죽음을 결심했던 날처럼 그 얼굴에서 빛을 발견할 수 있을테니까.


영화는 잠든 여동생 정옥의 얼굴을 상옥이 오래도록 바라보며 끝이 난다. 당신이 볼 수 없는 당신의 얼굴을 대신 소중히 바라보면서.


당신얼굴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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