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맥킨지, 하버드 등 단어에 낚여서 봤는데, 너무 뻔한 자기계발서라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인맥 관리'를 강조하던데, 개인적으로 부정적이다. 뭐 저자는 풍요로운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몰라도 결국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친해지려는 '인맥 관리'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
일을 잘하는 것과 편하게 하는 것은 다르다. 업무 파악과 체계 확립이 된 상태에서 친하게 지내는 것은 일을 잘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친해지는 노력부터 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업무 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친숙한 관계가 형성되면 업무와 상관없이 서로 봐주기 시작한다. 심할 경우 실패한 업무는 없던 일이 돼버리기도 한다. 보통 영업 분야에서 인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
1. 고객과 안면을 트고, 식사를 한다. (한솥밥 먹는 사이가 되는 중요한 단계라고)
2. 취미를 공유한다.
3. 고객의 고민이나 야망을 공유한다.
4. 고민 해소나 야망을 이룰 수 있다는 제안을 주고 받는다.
이 때 제안 대상이 자동차나 냉장고와 같은 일반 소비재라면 해피엔딩이 될 수 있다. 제안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제안의 목적과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수한 소비재가 필요한, 내가 종사하고 있는 정보보안과 같은 분야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제안의 목적이나 결과를 서로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제안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
왜 그럴까? 자동차나 냉장고로 고민이나 야망을 해소할 수 있는 분야는 'A일때는 B를 하라'는 단순한 매뉴얼이 통용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이다. 분야 전체의 예측이 가능하고 이를 포괄하는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세상에는 'A일때 그 A의 성격에 따라서 B ~ Z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결과 예측이 어렵고 불확실성이 높은 분야 역시 많다. 그리고 이런 분야는 컴퓨터가 따라하지 못하는, 보유한 경험이나 지식을 상황에 맞게 선택하고 응용할 수 있는 인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참고 : 당신의 조직에서 새 방법론이 먹히지 않는 이유
그런데 이런 특성을 희한하게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IT 분야에서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컴퓨터를 만든 사람을 감히 무시함.
IT 분야의 변방인 정보보안 분야를 보자. 이 분야는 시장 자체가 작다 보니 돈을 쓰는 소비자가 정해져 있고, 정보보안 벤더들은 이 소비자에게 자신들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그래서 측정 가능한 성과를 내본 적이 없는 솔루션을 이용한 차세대, 고도화, 선진화 등의 성과를 집중 제안한다.
문제는 컴퓨터는 인공지능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제안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비전과 해법을 갖고 있는 인력이 같이 제안되어야 하는데 인력이나 인건비 증가를 실패한 성과로 바라보는 문화때문에 성과 극대화를 위해서 인력/인건비 감축을 병행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실제 성과를 완성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은 발 붙일 자리를 잃게 되고, 성과를 잘 포장해줄 (말 잘하고 문서 잘 만드는) 인력들만 살아남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분야의 특수성 때문에 원래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제대로 된 성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성과를 인정받은 소비자는 승승장구하게 되고, 같은 성격의 성과 창출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게 되며, 수많은 Follower들을 양산하게 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빅데이터(요샌 인공지능?)가 아닐까 한다. 오래전부터 정보보안 분야는 상관 분석 또는 프로파일링 등의 방법론을 세일즈해 왔다. 그 결과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많은 솔루션이 구축되었지만 성공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프로젝트 전후 개선된 수치를 공개한 사례가 없다) 하지만 구축된 시스템은 모두 성과가 되었다.
참고 : 프로젝트는 왜 성공하는가?
그런데 빅데이터가 뜨더니 그동안은 스몰데이터라서 잘 안됐지만(실패 인정?) 빅데이터를 이용하면 성공할 수 있다면서 연관/상관 분석, 프로파일링 방법론을 다시 세일즈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8년 현재는 '빅데이터'란 단어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된 상태.
뭐 먹고 사는 문제이니 파는 사람은 털끝만큼의 가능성이라도 부풀릴 수 있다고 본다. 누가 그러지 않았나?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쁘지만, 두 번 속으면 속는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특수 소비재를 소비하는 소비자는 전문성은 기본이고, 목적과 결과를 반드시 스스로 심사숙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너무 '인맥 관리'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게 아닌가 싶지만, 성과 평가가 어려운 특수한 분야에서, 성공으로 포장된 실패 사례를 설겆이하는 수많은 실무자 중 한 사람으로써 '인맥에만 의존'하려는 업무 행태는 이제 그만 사라졌으면 한다.
그리고 40 이후 득실 따지는 인맥 따위 그만 신경 쓰고 자신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로서는 '인맥 관리'를 통해서 '그들만의 리그' 만들기를 조장하는 책도 그만 나왔으면 한다.
사족
북리뷰를 남기려는 이유가 한번 읽고 덮어버리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인데, 책을 읽으면 읽은 시간의 세 배 만큼 그 책에 대해서 고민해본다는 맥킨지의 독서 방법은 약간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