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나는 귀엽다. 그리고 귀여운 게 최고다.

by 진솔

누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라는 말을 뱉었는가.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단연, “못생겼다.”라는 말일 것이다.


“그래도 솔이는 귀엽잖아.”

라는 말에도 “ 얘가 뭘 귀여워. 내 쌍꺼풀을 닮았어야 했는데, 지 아빠 닮아서 눈도 작고, 코도 뭉뚝하고.”라는 말로 받아친 것이 나의 엄마이다. 덕분에 10대의 나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했고, 당연히 ‘못생긴 아이’로 그냥 그렇게 지냈다. 그렇다. 유년의 나는 나도 모르게 날 못생긴 아이로 정의했다.


교정 수술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내 턱은 남들보다 유난히 튀어나와 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그 턱을 보던 같은 반 남자아이가 말했다.

“ 솔직히 너는 턱만 집어넣으면 괜찮은데.”

솔직히라는 말에 솔직히,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생각할 만큼 상처를 받았으나, 조용히 살고 싶던 나는 그 말에 거지같이 “뭐래.” 하며 웃고 말았다. 당시 못생겼다는 사실 자체로 화를 낼 수 없다고, 그런 말에 욱하면 안 된다고,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우리 집은 재수 안 돼.”, “교대 가면 교정 수술시켜줄게.”라는 엄마의 말에 넘어가 국어국문학과를 포기, 교대를 갔고, 21살이 되던 그해, 15살, 그날의 트라우마를 탈피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그 수술을 드디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동그란 얼굴형과 작은 눈, 콧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복코가 어딜 가겠는가. 30을 앞둔 나는 여전히 그들의 미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못생긴 아이”다.


그래서 여전히 못생긴 상태로 살고 있는가? 이에 대해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니요. 저는 귀여운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여운 건 안 질려.

저렇게 뻔뻔하게 대답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매력적인 사람이다.”라고 수없이 얘기해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사람들과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취미 삼아 하곤 하는데, 하루는 “서로의 이미지에 대해 글 써주기.”라는 주제로 모임을 하고 있었다. 나를 뽑은 언니는 나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그녀는 샴푸 향처럼 은은하다. 누구에게나 한 번에 각인되는 사람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각인되지는 않는, 그러나 은은한 향기를 알아볼 누군가에게만 각인될 사람. 그 말은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못생겼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은 나에게 인생의 가치관을 뒤흔들 만큼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보면 볼수록 내 얼굴은 여전할 테지만, 누군가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구나.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까. 난생처음들이었다고 생각한 그 말에 생각이 많아졌는데, 많아진 생각에 빠져들수록 깨달았다. 이미 나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나에게 “샴푸향 같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만, 나도 알지 못했던 지독한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그 아름다운 말들이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샴푸향 이후로, 이제는 나를 향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말을 몸에 차곡차곡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보라색이 어울리는 사람, 웃을 때 눈이 없어지는 게 매력적인 사람, 온몸에 살이 다 빠져도 얼굴 살은 그대로인 사람, 알면 알수록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 등 나를 애정하는 그 말들이 여전한 내 얼굴을 스스로 ‘이 정도면 귀엽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와중에 동생이 나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 나는 통통해도 자존감 높은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

항상 체중을 일정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지독히 신경 쓰던 나는, 동생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날씬한 허리와 가는 다리, 큰 눈과 날렵한 턱선으로 첫인상을 결정하는 각박한 이 사회에서 자신만의 체형을 사랑할 줄 아는 배포. 어쩌면 내가 지독하게 다이어트를 하고 온갖 주사를 맞아대는 것은 그 배포를 가질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부터 다른 이를 처음으로 마주할 때, 그리고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할 때,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그것들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여전히 중요한 일을 앞두면, 각종 시술의 유혹을 떨치기가 어려우나,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생긴 대로 살기로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 인생 swag가 아닐까. 그리고 지금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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