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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an 08. 2020

소개팅 콜렉터의 최후


 대학생 2, 3학년 때 나는 소개팅을 많이 했다. 아니, 소개팅을 많이 모아두었다. 빵실빵실하게 웃으면서 거침없이 리액션을 내뱉는 나는, 쿨하고 멋진 사람들이 꽤 귀여워하는 친구였는데, 그들과 친해지고 나면 나는 으레 인사처럼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줘.”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럼 친구들은 휴대전화의 카톡 목록을 훑으며 얘기했다.

 “ 아직 소개해줄 만한 사람이 없다 야.”     


 그들 중에는 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소개팅 한 번 해볼래?”라고 다시 연락해오는 단비 같은 이들이 간간이 있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할래."


 너 그때 키 큰 사람이 좋다고 하지 않았어? 얘는 좀 작은 편인데. 너 책 많이 읽는 사람이 좋다고 했지? 근데 얘가 책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등등의 주석이 붙었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일단 만나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 할래.”     


 따져 묻는 것 없이 시원시원하게 예스를 외치는 나에게 친구들은 반색을 표했고, 일사천리로 내 번호를 소개남에게 넘겨주었다. 그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주선자들은 이야기했다.

 “그치. 만나봐야 알지. 잘 됐으면 좋겠다. 너에게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사실 그때의 나는 ‘좋은 사람’보단 ‘소개팅’이 중요했다. 소개팅이 하고 싶었고, 남자가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거의 일 년의 시간 동안 소개팅을 30번 넘게 할 수 있었다. 애프터를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나에게 애프터 연락을 한 남자들은 모두 3초 안에 다신 만나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한 상대였다. 겨우 맘에 드는 상대에게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고 답장을 받고 나면, 연락하다가 이틀 안에 흐지부지되거나 두 번째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내 소개팅의 성공확률은 0%였다. 내 20대의 최고 위기였던 ‘그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진 소개팅으로 남자와 연애를 시작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것이다. (‘그 연애’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에 이어진다. 최소 구독을 권하는 글.)                


20대 중반까지 이어진 이솔의 소개팅 콜렉션의 역사는 엄청난 흑역사를 자랑하며, 재미를 보장한다.

  윤종신은 청춘 페스티벌의 연사로서 “ 나를 사랑해주는 한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라는 질문자의 고민에 이렇게 얘기했다.

 이건 저의 사랑 이론 중의 하나인데, 이 분이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안 나타나는 이유는, 지금 찾고 있어서예요. 막 찾아다니면, 아, 남자친구 사귀어야지, 여자친구 사귀어야지, 눈에 불을 켜고 다니잖아요? 그럼 자신의 매력이 남에게 안 보여요.


 이후에 그는 자신이 38살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총각으로 마흔을 맞이할 생각으로 일에 열중했기 때문이라 말하며, 사랑을 찾고, 갈구하면 상대에게 내가 아쉬워 보이고 별로이기 때문에 오히려 힘들어질 것이라 조언했다.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살아가다 보면 서로에게 호기심이 생기는 사이가 되고, 사랑으로 발전하리라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그때의 나는 딱, ‘사랑을 갈구하던 시기.’였다. 보는 사람마다 소개팅을 갈구하고, 소개팅을 나가서 상대가 딱히 맘에 들지 않아도 매력 어필에 힘썼던 지난날. 주선자에게 “그 사람이 너 되게 맘에 들어 하더라.”라는 피드백에 미쳐있던 지난날. 그 사람이 지금은 날 알아봐 주지 않아도 내가 노력하면, 혹은 내가 지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만나보면 사랑은 시작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확신으로 착각하던 지난날. 그때의 나는 사랑을 시작하기 힘들수록 나는 사랑을 더 찾아 헤맸다.     


 지금의 나는 꼭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귀엽긴 한데, 그만 좀 하라고. 그 이상 그러면 꼴이 우스워진다고. 네가 사랑을 찾아 헤맸기 때문에 사랑하기 힘들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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