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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an 28. 2020

나는 사실 예쁜 것들이 부럽다.

내 인간관계에는 특이한 사실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지인 중에 예쁜 여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냥 친구가 보기에 예쁜 여자 말고, 그동안의 수치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따져보았을 때, ‘남자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소문나게 예쁜 여자들’과 아주 친하게 지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나 가장 친한 언니와 친구들은 온갖 헌팅와 소개팅, 미팅의 애프터 요청에서 도망쳐 나온 무용담을 얘기해주곤 했다. 그에 이어 현재는 ‘0학년에 그 선생님 진짜 예뻐.’라고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꼭 소문이 나는 여교사들과 술메이트를 하고 있다.

 그에 반해 나는 눈이 풀린 아저씨가 지하철에서 다가와 도망간 것을 제외하고는 번호를 따여본 적도, 낯선 남자가 말을 건 적도 없는, 연애에 있어서 100% 도전정신과 끼 부림을 남발해야 하는 주체적인 여성이다.      



 아마도 그들이 나에게 무한 애정을 준 것은(그리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나의 ‘태도’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몸무게가 어떻건, 나는 떡볶이에 맥주를 마셨고 그들의 소개팅이 성공적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오, 너 걔랑 좀 오래 만나면 걔 친구들 좀 소개해줘 봐.”

 그들 옆에서도 편하게 자기 인생 챙기는 사람. 나는 그런 존재였다. 아니,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사실 그때의 내 일기장은 타인이 나를 보는 것만큼 쿨하지 않았다. 일기의 내용은 365일 다이어트 계획으로 꽉 차 있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실패했다. 필러를 맞을까 수술을 할까 고민의 연속이었으며, 차임의 연속이었던 내 연애사를 그들에 대한 부러움과 한데 섞어 한탄하기도 했다. 또한, 간단한 화장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쌩얼의 상태로는 거울을 잘 보지 않았다. 그것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았던 것은, 어렸을 적부터 쌓여온 ‘사랑과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한’ 수많은 실패와 예쁜 이들을 부러워해봤자 내 마음만 더 쓰라렸던 경험이 쌓인 내공 덕분이었다. 그때의 나는 건강해 보였을 뿐, 당당하게 ‘건강했다’라고 말하기가 힘들다.



 그랬던 내가 헬스 지옥과 성형외과 광고를 끊게 된 것은 ‘사랑받기’를 포기하고 홀로서기를 선택한 순간부터였다. 그것은 남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시작되었다.     


 비행기에서 오랜 기간 숙성된 이솔은 소변이 마려웠고 화장실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기내 화장실의 거울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의 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여행 동안 뿌염을 하지 못해서 괴상하도록 정갈하게 나 있는 검은 머리와 떡짐의 콜라보. 비행기에 타기 전 간단하게 했던 화장과 개기름의 콜라보. 거기에 충혈된 눈은 덤. 와, 수백 명의 사람 사이에서 이 꼴로 있었다니! 그리고 아직 10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꼴로 더 있어야 한다니! 그때의 나는 내 몰골에 대한 충격과 동시에 아르키메데스의 목욕물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유레카! 이 얼굴로 남자 만나기는 글렀구나!’ 그렇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기장에는 ‘그래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피하지는 않겠다.’라고 적었다.)     


 사랑받는 것 대신 편한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다이어트 때문에 푸석해진 내 얼굴은 신경 쓰지도 않고, 살이 빠졌다고 좋아했던 구남친들과 사별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남들이 예쁘다고 말했던 갈색 머리도 뿌염하기 귀찮아서 8년 만에 검은색으로 덮어버렸다. 높은 힐은 신발장에서 사라졌고, 몸에 딱 붙는 원피스 대신, ‘(우리 엄마 말로는) 광대 몸 바지’ 같은 편한 옷이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방 한쪽에 붙었던 몸매 좋고 예쁜 여자들 대신,  활짝 웃는 나와 가족의 사진이 붙어있다.     


 그 후에도, 나는 여전히 기막히게 이쁜이들과 친하게 지낸다. 아니, 정말 편하게 지낸다. 여전히 이쁜이들만이 겪을 수 있는 경험담에 놀라워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얘 진짜 예쁘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이제 정말 편하게 그들을 부러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아마, 어쭙잖은 자존심과 피해의식 때문에 부러워도 부럽다 얘기를 못 하고 엉뚱한 얘기나 했을 텐데, 이제는 ‘네 얼굴이 정말 부럽다’라며 일기장 말고 입으로 얘기한다.      


 대신, 일기장에는 이런 이야기를 쓴다. 책을 읽고 심장에 원 펀치 맞은 이야기. 이 닦다가 생각난 영감.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반문 등. 더는 얼굴과 몸매가 내 하루의 주제가 되지 않는다. ‘예쁜 것’에 대한 부러움은 여전하지만 한순간이 되었고, 내 삶의 중요도는 다른 곳을 향하게 되었다.     

 

 내 브런치 글이 다음(DAUM)의 메인에 노출되었던 날, 대학생 시절 우리 과에서 제일 예쁘기로 소문난 언니가 나에게 인스타 DM을 보내왔다. (원문을 그대로 써보겠다.)

[ 솔아, 너가 쓴 글이야? 진짜 … 너무 멋지당 ㅠㅠ 나 너무 이 글 읽고 위로받았오ㅜㅜㅜ 너 글인지 모르고 봤는데. 솔아 너 글 진짜 잘 쓴다!! 재능 만땅이여… 부럽따아아]

 언니는 당시 크게 다쳐서 외출이 힘들었고, 때문에 우울했으며 그런 그녀에게 내 글이 위로되었다고 했다. “언니 얼굴이 더 부럽따아아”라고 답을 보내고 싶었지만, 글을 더 열심히 쓰겠다고 답을 했다. 예쁘다는 말보다 글을 진짜  쓴다는  말을 들었을 , 나는 편하고 찐하게 웃을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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