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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Aug 30. 2023

고독을 씹는 방법

신혼이라 좋지?

 "신혼이라 좋지?"

 "신혼인데 좋겠지."

 '신혼'이 주는 의미를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되새겨줄 때마다 나는 가끔 난감하곤 한다. 그들이 말하는 '신혼'이란 결혼을 한 지 얼마 안 된 부부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게 얼마나 좋겠냐.'를 의미하는 게 분명한 거 같은데. 사실 우리는 그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만난 지 꽤 되다 보니, 다른 신혼부부보다는 익숙한 것 같다고 둘러댄다.


 신혼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건 사이좋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신혼'이란, 서로 살림을 합친 두 사람이 휴일도 함께 하고, 저녁 시간을 함께 하며 함께 잠에 드는 일에 설렘과 기대를 가지는 형태를 말하는 것 같다. 


 아쉽게도, 그런 게 신혼을 의미하는 거라면 우리는 세모 정도 되는 거 같다. 우리는 한 집에 살면서 저녁 시간을 거의 각자의 일로 보내고, 저녁을 같이 먹는 일은 드물고, 가끔 주말도 각자 보낸다. 현재의 우리 사이를 굳이 규정하자면 '각개전투와 팀워크에 능한 신혼부부' 정도랄까. 이렇게 된 것에는 우리의 직업 때문이다. 나의 전 남친이자 현 남편인 김 씨는 하는 일의 특성상 주말에도 바쁠 때가 많다.




 그날의 주말도 그러했다. 주말에만 쉴 수 있는 나는 홀로 집에 남아있었고, 김 씨는 일을 하러 가야 했다. 가끔은 이런 사태에 불만을 표시하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필살기를 꺼내 든다.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게 그 없이도 하루를 보내는 방법. 나는 우리의 관계를 위해 그걸 꽤나 자주 연습해 왔다. 고독을 오독오독 씹고 고소함까지 느끼려면 연습이 꽤나 필요하다.


 그 노하우를 공개하자면 바로, '취향'이다. 나는 감정기복이 심해서 김 씨에게 고독을 이유로 짜증을 낼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다행히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기에 쿨하게(그런 척 하지만 상당히 아쉽게) 그를 일터로 보내줄 수 있다. 좋고 싫은 게 분명해서 그가 없이도 내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면 내 취향에 맞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요즘은 김 씨가 서운할 정도로 내 하루를 잘 보내고 있다. 그가 아침 인사를 나눈 자리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집안일을 빠르게 한다. 속 시원한 마음으로 커피 한 잔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크게 틀어둔다. 2시간 정도 음악과 함께 책을 읽고 나면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샘솟는다. 그럼 나의 행복하고도 괴로운 글쓰기 시간이 시작된다. 글을 쓰다 보면 김 씨가 온다. 김 씨는 꼬질꼬질하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주말을 보낸 나를 본다. 




 나도 처음부터 이럴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꼭 분리불안이 있는 개 같았다. 일 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김 씨의 일이 끝나는 것만 정처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TV나 SNS를 하며 무료하게 풀린 눈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일을 끝낸 김 씨가 미안하다며 안아주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 있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날려버린 것이 너무 후회된다. 


 공감왕 김 씨는 나를 자주  홀로 남겨두는 것에 대 미안함과 고마움을 같이 가지고 있는데, 둘의 대화에서 이를 자주 표현한다. 둘이 함께 속초 여행을 갔을 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눴을 때다. 

 "너는 우리 연애할 때에 비하면 진짜 이렇게 성장한 거 같은데 나는 아직 머물러 있는 거 같아."

 나의 투정 어린 말에 김 씨가 대답했다. 

 "아냐, 내가 보기엔 많이 성장했어! 이제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잖아. 그것만 해도 엄청 큰 거야."


 나는 단순하게 돈벌이에 관해 얘기한 건데. 김 씨는 내가 취향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반성이 됐다. 굳이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그는 내가 나에 대해 알게 된 것만으로도 '성장했다'라고 알아차려줬다.


 김 씨의 말대로 나는 성장했다.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의 의미를 정확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취향을 갖기 전의 내가 생각한 알찬 하루는 일찍 일어나 깨끗하게 씻은 몰골로 자기 계발에 몰두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생각하는 알찬 하루는 다르다. 내가 '오늘 하루 잘 보냈다.' 생각할 때는 항상 그 하루가 내 취향으로 꽉 찼을 때였다. 떡진 머리에 기름기가 반짝한 얼굴, 잠옷차림에 집 밖으로 한 발자국 안 나가더라도, 그 하루가 내 취향을 저격했다면 알찬 하루다.




 오늘은 김 씨가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 오늘 밤은 어떤 음악과 어떤 글로 나의 밤을 채울 수 있을까. 넓은 침대에 혼자 자는 일은 고독하겠지만 어떤 방해나 신경 쓸 것도 없이 글을 쓰는 일은 꽤나 즐거울 것이다. 빈자리가 느껴지겠지만, 공허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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