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과 무생채
왼손으로 글을 쓰는 아들을 보니 나도 예전에 왼손잡이였던 것이 생각났다. 일하는 엄마대신 우리 남매들의 밥과 숙제를 챙겨주던 이모 덕분에 나는 오른손으로 연필과 젓가락을 잡게 되었다.
유일하게 남은 왼손잡이 흔적은 칼질이다. 이모의 교정교육이 닿지 않은 영역이다. 가위는 오른손으로 사용하는데 칼은 왼손으로 잡는다. 왼손으로 칼을 잡고 썰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럴수록 능숙하게 양파를 썰고 파를 다진다.
급하게 등록한 요리 학원 수업에 따라갈 수 있는 건 자취 포함 삼십 년이 넘는 동안 해온 빠른 칼질 덕분이다. 아직 정해진 규격을 다 맞추지는 못하지만 썰기, 특히 채썰기 속도에 있어서는 자신있게 상위그룹이라 말할 수 있다. 뜻밖의 재능 발견이다.
비빔밥은 일곱 가지의 색으로 채소, 고기 그리고 얇게 부친 황백 지단을 같은 크기로 채 써는 것이 핵심이다. 함께 배운 무생채도 같은 굵기와 길이로 일정하게 채 써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선생님 평가는 여전히 규격은 맞지 않지만 그 안에서 일관성 있다는 것. 즉 모두 규격보다 굵다는 것이다. 그래도 빠른 왼손잡이 채 썰기로 시간 내에 여유 있게 제출했다.
잡채, 탕평채, 겨자생채 처럼 한식 요리에는 채를 썰어야 하는 요리가 끓없이 이어진다. 앞으로도 당분간 채썰기의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