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일상 2

낮에 회식하는 주부들

by 한여름

오늘 시장조사는 경동시장이다.


성시경의 ‘먹을텐데’에 소개된 남원통닭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도 보이는 가게마다 멈춘다. 이천 원에 일곱 개나 주는 미니 찹쌀 도너츠랑, 다섯 개 이천 원하는 찐빵을 사고도 가는 길에 옥수수랑 흑임자 인절미를 샀다. 남원통닭은 떡, 고구마 그리고 꽈리고추를 같이 튀겨준다. 반반치킨을 시키고 생맥주 한잔을 곁들이면 낮이라도 괜찮은 회식이다. 경동극장을 개조한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일정을 마무리한다. 말은 시장조사라고 하고 천 칼로리 먹방이다. 나오는 길에 펼쳐진 과일 좌판에서 흐려진 판단력으로 다 물러버린 애플 망고를 또 샀다.


직장맘에서 회피할 수 없는 육아로 주부가 된 두명의 후배와 한 달에 한 번 날짜를 정해 두고 만난다. 회식이 그립다는 그녀들과 낮에 만나 회식하는 날이다. 퇴근 후 노동주로 마실 법한 술과 안주를 찾아 나섰다. 장보기는 시장조사라 부르고 같이 먹는 한 끼는 회식이다. 헤어질 때는 다음 모임 전까지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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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장조사는 중앙시장이야! 뭐가 먹고 싶은지도 생각해 보고.”


우리는 그녀들의 이십 대, 나의 삼십 대에 직장 상사와 직원으로 만났다. 퇴사 후 회사 사람들, 특히 상사를 만나고 싶을까. 다행히도 우리는 만나면 기운이 나고 아이디어가 넘 쳐난다. 잠깐의 퇴사일뿐, 퇴직으로 인정하기 싫은 그녀들은 지난 회사생활을 추억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와 함께 시장 구경하는 것도 업무처럼 꽤나 진지하게 임한다.


일곱살이 될 때까지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꼰대 남편의 성화에 회사를 관두고 두아이의 육아에 제대로 전업 주부 체험중인 예슬. 그녀 보다 언니지만 늦은 출산으로 이제 돌이 막 지난 딸 이솔의 엄마 미리. 모성애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육아와 가사 보다는 소비자 활동이 더 즐거운 주부들이다. 그녀들과 헤어질 땐, 다시 만날 신나는 핑 계거리를 생각한다.


“늘 트렌드를 파악하고 소비자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


비가 잠깐 개인 여름 날 어느 금요일, 압구정 로데오 시장 조사는 미리와 함께 했다. 초복이 언제 인 지도 몰랐지만 영양 삼계탕은 교회에서 온 신도들로 꽉 차 있었다. 셀프 돌잔치를 하고 한달째 감기가 안 떨어지고 입맛도 없다는 그녀를 위해 몸보신 메뉴로 골랐다. 서로 안부도 묻지 않고 열심히 삼계탕을 먹던 그녀가 한마디 던진다.


“입맛이 없는 게 아니라 같이 먹는 사람 때문이었나 봐요. 너무 맛있어요.”


괜히 코끝이 찡하다. 새로 생긴 버켄스탁과 알로, 어티슈 그리고 알레시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다시 생기를 찾은 미리가 말한다. “다시 일하는 것 같아요. 8월엔 오랜 만에 성수동 가조쿠에서 소바 먹고 팝업 구경할까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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