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세 명의 주부가 산다.
민규가 태어난 지 한 달 되던 날 오셨던 아주머니는 할머니가 되어, 이제 일주일에 이틀 우리 집에 출근한다. 공식적으로 지난 18년간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은 기여를 한 1번 주부다. 진작에 퇴사를 했어야 하지만, 할머니와 이별 준비가 안된 아들의 바람으로 올해까지는 알바 주부다.
올 초 퇴직한 남편은 2번 주부. 대학 첫 학기 하숙을 제외하고 결혼 전까지 자취생활을 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루 종일 머리카락을 줍는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덕분에 청소를 좋아한다. 게다가 나보다 훨씬 알뜰하다. 진짜 반찬 가게부터 요일마다 다른 마트 할인상품을 알고 있고 소주 가격을 비교해 사는 그는 장보기와 청소 담당이다.
결혼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었다면, 나는 이미 주부 스킬 만렙 찍고 며느리에게 전수할 비법 책을 쓰고 있어야 할 26년 차 주부다. 퇴사 후 오랜만에 제대로 주부를 해볼 시간이 주어졌는데 할 일이 별로 없다. 특히 1번과 2번이 하는 일을 빼고 나면 나는 정말이지 명목상 3번 주부다.
일하는 엄마 덕분에 일찍부터 장보기도 도맡아 하고 언니 오빠 도시락을 싸주고, 서울 10년 자취 생활동안 갈고닦은 음식 솜씨도 있다고 자부했건만, 가족들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옛날이야기다. 명예 회복이 시급한데 만만하지 않다. 특히 살림에 재미가 붙은 남편이 아들 귀가에 맞추어 밥부터 된장찌개까지 담당하면서, 나는 야채를 다듬어 썰거나 수저를 놓는 보조 역할을 벗어날 수 없다.
다행히 가끔 나를 돌아온 경력자 주부로 인정하는 친구들이 있다. 내가 만든 진미채와 멸치볶음은 엄마가 생각나는 반찬이자 언제든 피곤한 날 집에서 마시는 맥주 안주가 된다. 어떤 날은 ‘우리 건강하게 살자’고, 아보카도 스프레드와 당근 라페를 만들어 와인을 마신다. 각자의 취향에 맞추어 좋아하는 반찬을 해주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가끔은 입맛 까다로운 아들에게 엄마표 수육을 만들어주고 나는 친구들과 금남시장 은성 보쌈에 간다.
국어사전의 “주부”는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가는 안주인, 혹은 한 집안의 제사를 맡아 받드는 사람의 아내’다. 너무 올드한 설명이라 난다. 나무위키에서는 가정에서 집안일을 전담하는 사람, 영어로 House wife 나 housemaker로 설명한다. 주부일을 전담하는 배우자는 house husband라고 한다. 우리 집에서는 2번 주부가 적합한 사람이다. 물 그리고는 당당하게 본인 노동에 대한 비용도 나에게 장난처럼 요청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이백이다. 협상에 응할 의사가 1도 없으니 이제 주급 이십으로 조정해서 달란다. 술 먹은 날이면 어김없다.
애초에 전업 주부가 될 능력도 마음도 없었지만, 될 수도 없다. 그저 내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오늘도 육수 한 알을 넣고 다담 된장찌개 소스를 넣고 본인이 끓인 된장찌개에 감탄하는 2번 주부에게 칭찬 한마디를 던진다.
“와 최고다. 또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