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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니체 Oct 17. 2021

성장의 지표

우리는 언제 성장했다고 느끼는가

내가 활동하는 카페에서는 각자의 주 수익을 인증하며 수익 인증 및 간단한 성장일지를 적는 문화가 있다. 초보 1인 사업가들이 주 몇 만 원대 매출부터 시작하여 천만 원대까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하지만 몇 달 전 모종의 이유로 이러한 문화가 중단되었다가 한 달 전 즈음 재개되었다.


카페 운영자님은 몇 달 동안 중단되었던 성장일지 작성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성장일지를 쓰지 않는 회원들의 등급을 강등시키며 동기를 부여했다. 강등이 되면 사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글과 운영자님의 칼럼을 읽을 수 없게 된다. 나를 제외한 회원들은 처음에는 미적지근한 반응이었지만 하나둘 성장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의 성장을 압축해서 적은 회원님들의 성장일지는 굉장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사업을 시작해서 반년만에 한 달에 매입비용만 7천만 원씩 쓰는 회원도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갖고 싶던 드림카를 뽑은 회원도 있었다. 그런 대단한 성장을 이룬 사람들의 일지를 보고 있자니 나로서는 도저히 글을 쓸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성장일지를 쓴 시점부터 지금까지 그다지 명확한 성장의 근거라고 할 만한 업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출이 오르긴 했으나 드라마틱한 정도는 아니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무언가 꿈에 그리던 것을 사지도 않았고, 독서를 미친 듯이 해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도 못했다. 나는 스스로 정체한 상태라고 믿었고 정체한 사람이 쓰는 성장일지는 거짓이기에 작성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운영자님이 고지했던 유예기간이 지났고, 나는 강등당했다.


이후 올라오는 칼럼의 내용이 아무리 궁금했기로서니 글을 쓰고 싶은 만큼의 임계치는 넘지 못하는 호기심이었다. 이 내용을 가지고 동종업계에서 활동하는 친구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스스로 정체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허심탄회하게 열거하는 동안 친구는 경청했고, 내가 말을 끝내고는 한참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했다. 나는 창업 초기에 전래 없는 급격한 성장을 경험했기에 그때 느낀 크기의 성취감이 아니면 성장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근 몇 개월 간 있었던 수많은 풍파를 극복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들이 어찌 성장이 아니며, 본인의 공간을 마련하여 만든 주체적인 삶은 또 어찌 성장이 아니겠으며, 당장 물질적으로만 봐도 매출액 1.5배 증가가 적은 수치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없었다. 나는 작년 초 창업 이후 3개월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서 월 매출 2천의 사업가로 변신이라는 믿기 힘든 경험을 했던 터라 정상적인 속도와 정도의 성장을 성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웨이트를 처음 배우면 초기 3개월 간 날이 다르게 근육량이 늘고 힘이 세지지만 일정량 이상 근육이 붙고 나면 일 년에 1 킬로그램을 불리기도 쉽지가 않다. 웨이트뿐 아니라 세상 모든 분야가 그러하다. 폭발적인 성장이란 대개 무언가를 시작한 이후 초기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이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점진적인 성장을 보인다. 


나의 경우도 비정상적인 성장추이에서 정상궤도로 돌아온 것뿐이다. 작은 폭의 성장도 결국에는 성장이고 결국 그 작은 성장들이 모여 목표에 가까워진다. 붉은 여왕의 역설이니 뭐니 해도 삶은 나만의 레이스이고 '언제' 도착했냐 보다는 '어디에' 도착했느냐가 더 중요한 종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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