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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니체 Feb 15. 2021

이 짐승만도 못 한 놈아!

사람과 짐승의 경계 그 위에서


흔히 쓰이는 경멸적인 관용어 중에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동물보다 우위에 있는 종족이라는 전제와 동시에,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기준을 충족하지는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짐승 취급을 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인간의 자격을 얻고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를 탐구하기 위해 첫째로 인간과 짐승이 무엇이 다른지를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족보행이나 언어의 사용 같은 특성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고유한 것이지만, 이것은 태어나면서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논의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짐승, 더 나아가서 인간다운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을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성은 무엇일까요? 저는 인간과 동물의 가장 다른 점을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봅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생존 욕구와 번식 욕구를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인간과 동물 모두 배가 고프면 먹이 활동을 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로 퍼뜨리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동물은 욕구의 발생과 충족만을 되풀이하는 반면에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가 만족되면 더 고차원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자신의 영역을 유지하고, 먹이를 먹고, 짝을 짓는 행위 외에 에너지를 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사냥 연습을 위한 놀이나 간단한 의사소통 또한 먹이활동과 번식활동의 연장선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러나 인간은 참 이상합니다. 본인의 생존과 번식에 일체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아부으니 말이죠. 바로 예술을 말하는 것입니다.


삶은 계란과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를 비교해봅시다. 삶은 계란은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한 완전식품입니다. 우리는 이를 먹음으로써 신체를 이루는 필수 영양소를 얻고, 신체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게르니카는 어떤가요? 먹지도 못하고 이걸 이용해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먹지 못하는 캔버스 위에 먹지 못하는 물감을 덕지덕지 칠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 이 둘의 가치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게르니카가 삶은 계란보다 수억 배가 비쌉니다. 소유하려고 그런 돈을 내는 것도 모자라서 전시회에 걸린 그림을 잠시 보려고 삶은 계란의 수십 배가 넘는 돈을 주기도 합니다.


만약 침팬지가 먹고 있던 삶은 계란을 뺏고 게르니카 원화를 쥐어주면 어떻게 될까요? 잘은 몰라도 인간 근력의 4배가 넘는 악력으로 무지막지하게 혼쭐을 내겠지요. 침팬지뿐 아니라 지구 상 모든 동물들이 자신의 먹이와 예술 작품을 교환하려는 시도를 하면(물론 그 행위를 인지할 수 있는 지능이 있다면) 그들이 가진 이빨과 발톱을 동원하여 불쾌함을 표시할게 뻔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이런 해괴한 취향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갈립니다. 인간은 육체적 욕구 외에 정신적으로 고양되고 싶어 하는 고차원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먹지도 못하는 비싼 예술 작품들에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특정 음들의 조합으로 사랑, 안락함, 분노, 흥분,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종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음성도 섞이지 않은 교향곡을 들으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유일한 종입니다. 또한 사물을 왜곡하여 평면 위에 뒤죽박죽 묘사해놓은 얼룩을 보고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있는 유일한 종이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몸으로 세상에 나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가 예술을 향유하는 인간으로 자라나지는 못합니다. 육체적인 쾌락만 추구하는, 그러니까 돈과 권력, 술과 섹스만을 살아가는 이유로 삼는 이들은 겉보기에는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도 엄밀히 따지면 삶은 달걀을 게르니카보다 선호하는 침팬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침팬지와 인간은 유전자의 98%를 공유합니다.)


예술을 하고, 예술을 즐긴다는 것은 문학작품을 읽고 전시회에서 그림을 보는 행위 자체는 아닙니다. 감상 이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감을 얻고, 그로 인한 정신적 고양감이 일어나야 합니다. 주어져 있는 사물, 사람, 시스템을 인지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 사색하고 표현하는 행위 일체가 바로 예술입니다. 이는 돈이 없어도, 시간이 없어도 일상의 모든 것들이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여러분이 책상을 정리하면서 만들어놓은 사물들의 배열이 어떠한 고양감과 정신적인 쾌감을 낳는다면 그것은 영화의 '미장센'과 다를 것 없는 예술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창의적인 방법을 도입한다면, 그 행위 또한 예술입니다. 이처럼 예술은 미술, 음악 등 특정 양식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육적인 욕구 그 이상의 것을 향한 의지와 그 의지를 통해 생산해낸 정신적, 물질적인 결과물에 대한 환희 모두가 바로 예술입니다.


우리 모두가 일상을 예술 자체로 만들어,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간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짐승만도 못한'이라는 말은 들을 일 없는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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