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는 식당에서 만족스럽게 밥을 먹고 난 다음, 꼭 하는 루틴이 있다. 바로 그릇 정리다. 음식물은 한 그릇에, 그릇들은 크기 순서대로 쌓아두고 쓰레기를 버린 다음, 마지막으로 테이블을 물티슈로 닦는다. 계산하면서도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는 찰진 멘트와 함께 식당 문을 나서며 누구보다 큰 소리로 인사하며 나온다. 물론 만족스러운 식당 한정이지만 어디든 기본적인 인사말은 잊지 않는 예의가 그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나도 예의라면 지는 편은 아니다. 식당이나 버스 등 어딘가로 들어섰다면, 인사를 잊지 않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거의 없다. 기어가는 목소리기 때문에 엄청난 청력이 아니고서야 내 인사를 알아들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인사라 해도 무방하다. 상대방이 알아들었든 말든 예의는 차렸다는 것에 만족스럽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식당에서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나오는 날에는 얼굴이 후끈해지면서 평소보다 목소리가 더 작아진다.
식당은 상대방의 예의 수치를 알아보기 적합한 장소다. 하루는 회사 친구 시은이와 점심시간에 카페를 간 날이었다. 시은이가 커피를 주문하고 카드를 내미는데 검지와 중지 사이에 카드를 끼운 채로 종업원에게 건넸다. 오래 전부터 신경 쓰이던 시은이의 습관이었다. 그 날은 용기냈다. 옷에 먼지가 묻은 걸 알려주듯, 가볍게 말했다.
“시은아. 너 예전부터 주문하고 카드 줄 때, 검지와 중지에 끼워서 주더라. 종업원이 보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시은이는 흡연하고 무의식적으로 생긴 습관이라며 소스라치게 놀랬다. 다음부터 자기가 그렇게 카드를 건넨다면 옆에서 뺨을 때려달라 했다. 다음에는 말이 아닌 주먹이 앞서는 조언을 해주겠다고 웃으며 넘겼다. 착한 것과 예의는 같은 말이 아니다. 착한 건, 선천적이나 예의는 고칠 수 있다는 점에서 후천적이다. 나의 인사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식당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종업원과 눈 마주칠 때까지 바라만 봤지 크게 ‘저기요!’라고 말한 지 3년도 되지 않았다. SNS에 수많은 갑질 논란이 올라오고 남자친구와 다닌 덕분에 자연스레 인사성이 밝아졌다. 음식이 나오면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노력한 끝에 무의식적인 지경까지 올랐다. 밑반찬이 많은 식당을 갈 때면, 감사 기계가 된다. 그럴 때면 남자친구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사실 인사에 ‘감사’보다 ‘과시’의 의미가 더 크다. 나는 무례한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걸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감사 남발은 가끔 손님을 을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웨이팅을 싫어하지만 중식이라면 일주일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아 자주 가는 맛집이 있다. 지점을 내지 않고 본점만 운영하며 평일,주말,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손님이 늘 많은 유명한 맛집인데 첫 방문이 인상적이었다. 남자친구와 웨이팅 명단에 이름을 쓰고 30분을 기다렸다. 번호가 불리고 들어가면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왔다. 이번 인사는 드디어 들여보내주시다니 정말 감사하다는 의미였다. 야끼우동과 탕수육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자 어김없이 인사했다. 무표정의 직원은 내 인사를 무시한 채, 그릇을 테이블에 탁 소리를 내며 놨다. 그것까진 손님이 많으니 그럴 수 있다며 넘겼다. 하지만 탕수육에 소스가 부어져 나온 건 넘어갈 수 없었다. 탕수육 찍먹과 부먹으로 몇 년동안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 시국에 처음부터 부먹으로 나오다니. 이건 찍먹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세였다. 혹시 주방장이 실수했나 싶어 직원을 불렀다.
“저희 따로 요청 안했는데 탕수육에 소스가 부어져 나왔어요.”
알바생으로 보이는 직원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부어져 나와요. 소스를 따로 해달라는 요청을 하셨어야죠.”
우리 꽤 유명한 맛집인데 그것도 몰랐냐는 직원의 말투에 어이가 없었다. 원래 부어져 나오더라도 미리 손님에게 말을 해주거나 표기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오랜 대기로 기력이 바닥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두말없이 눅눅한 탕수육을 먹어야만 했다. 식사 후, 남자친구는 그릇을 정리하지 않았다. 맛없어서가 아니라 맛집의 치솟는 콧대에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눅눅하지만 달고 쫀득한 탕수육과 매콤하고 야채의 아삭함이 살아있는 야끼우동을 잊지 못해 우리는 그 이후로도 그 집을 자주 찾았다. 그리고 탕수육 시키기도 전부터 말한다.
“탕수육에 소스 따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