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에 브래지어 걸어둔 이마트는 보아라

by 지은심


주말에 이마트에서 브래지어를 골랐습니다. 무난한 브래지어지만, 반값 행사에 카트에 냉큼 담았습니다. 반값에 인기가 좋았는지, 제 사이즈를 찾기가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사이즈라 그런 것 같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브래지어들을 뒤적이며, 겨우 하나 남은 걸 찾았습니다. 옷은 카트에 담으면 그 옷을 입은 저를 상상하기 마련인데, 속옷은 그렇지 않더군요. 그저 가리는 기능만 좋으면 장땡이다 싶어서 더 싼 걸 추구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이제 가격만 보고 판단하는 습관을 고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속옷만큼은 비싸더라도 좋은 곳에서 사야겠다는 결심을 이마트에서 하게 되었어요.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마트는 그야말로 전쟁터였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계산대에 물건을 겨우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제 뒤에는 계산하려는 줄이 길었기 때문에 손이 빨라졌습니다. 포장 하나 없이 옷걸이에 달랑 걸린 브래지어도 신속하게 올려두었지요. 저는 그때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캐셔 아주머니가 민첩하게 계산을 끝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제가 느끼는 사소한 민망함을 배려해주리라 기대했습니다. 아주머니가 브래지어를 계산하기 전에, 작은 종이봉투를 던져주시더군요. 계산 끝낸 브래지어를 넣는 봉투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브래지어를 모두의 시선에서 숨길 만반의 준비를 모두 끝냈습니다. 야속하게도, 제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브래지어에 바코드가 없었거든요. 아주머니도 당황하며 옷걸이에 달랑 걸린 브래지어를 살펴봤습니다. 요리조리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동안, 제 것이 될 브래지어는 계산대에 줄 선 아저씨들에게, 아줌마들에게, 어린이들에게 시선으로 해부당했습니다. 시간이 참 더디게 흘렀고 저는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저와 제 브래지어를 일치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속옷에는 참 많은 개인정보가 들어있다는 걸, 이번을 계기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 가슴의 사이즈부터 무난한 취향까지도 다 들어있지요. 노출하지 않고도 노출 수준의 수치심을 줄 수 있다는 게 개인정보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가성비를 추구하고 있다는 걸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지독하게 민망한 순간에도 브래지어를 포기하지 않았으니깐요. 매대에 주렁주렁 걸린 브래지어들을 고를 때에는 전혀 몰랐던 수치심이었습니다. 매대의 속옷은 누가 주인이 될지 모르는 익명성을 보장하고 있잖아요. 근데 카트에 담긴 순간부터 속옷의 주인은 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니 익명성이 해제됩니다. 종이봉투가 그 순간부터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동네 한가운데 있는 전봇대에 브래지어와 제 이름표를 걸어둔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계산대에서의 시간이 길어지자, 멀리 있는 손님들도 고개를 기웃거리며 무슨 일인지를 확인했습니다. 저는 포기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더 주목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캐셔 아주머니가 누군가를 호출하는 벨을 눌렀습니다. 띵동.


“바코드가 없어서 가격을 찾아줄 사람이 올 거예요.”


이왕 수치스러운 거,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기다려 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잠시 후, 마트 조끼를 입은 아저씨가 등장했습니다. 더 나은 방법을 기대한 저는 단단히 배신당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브래지어를 휙 아저씨에게 건넸습니다. 아저씨는 높게 브래지어를 들고 가슴 부분을 뒤집어도 보며 바코드를 찾으려 했습니다. 당연히 없지요. 그 얄궂게 작은 천 조각에서 바코드가 숨을 공간이 어딨겠습니까. 아저씨가 열심히 브래지어를 탐닉하는 동안, 속이 몹시 울렁거렸습니다. 곧바로 토할 것 같았어요. 그동안, 수치심은 분노로 표출된다고 오해했습니다. 당하고도 화를 내지 않는 여성들을 보면 답답했습니다. 왜 화를 내지 않지? 왜 소리치지 않지? 막상 경험해보니, 당사자가 아니기에 화를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짜 수치심은 속에 있는 오장육부를 꺼내서 깨끗하게 씻고 싶을 정도로 지독하게 울렁거립니다. 어지로운 속을 부여잡고 저는 KO를 나지막이 외쳤습니다.


“저 안 살래요.”


차로 가는 길 내내, 헛구역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작가로서 이번 일로 정말 많은 걸 생각했어요. 심지어,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었어요.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대신 화를 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원하는 말을 듣는 경우는 절반이었습니다.

“천 쪼가리 뿐인데, 뭐.”

“그 사람들은 일한 것 뿐이잖아.”


다 맞는 말이라 긴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지양하는 건, 흔히 말하는 ‘맞는 말’입니다. 어떤 일은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캐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상처 줄 의도 없이 일했음에도 상처는 받을 수 있습니다. 무심코 쓰는 보편적인 단어에도 상처받는 사람이 있듯이요. 책임은 결국,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여성이라는 형태로요. 배려가 의무가 아니기에 참 어렵습니다. 배려받지 않으면 감수해야 할 원치 않는 경험이 있음에도 화를 낼 수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배려의 관점에서만 말한다면, 저는 할 말이 뚝 떨어지므로 다른 관점으로 마무리를 지을까 합니다.

이마트의 핵심가치가 ‘신뢰’와 ‘프리미엄’이라 들었습니다. 소비자로서 브래지어를 구매하며 어떤 신뢰도 어떤 고급짐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카피로 내세우는 ‘믿고 사는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진작에 노브라를 시전하지 못한 자책을 얻었습니다. 여성으로 산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라는 착잡한 자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프라인으로 어떤 브래지어를 사더라도, 이번 경험이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좋은 경험을 먼저 제공하며 더 탄탄한 브랜딩을 설계하는 걸 제안해봅니다. 그럼 이만 온라인으로 브래지어를 구경하러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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