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하는 퍼스널 브랜딩
"알면 사랑한다."
생명을 이야기하는 통섭의 과학자 최재천 교수님은 말했다. 알면 사랑한다고. 저자 강연회에서 책에 직접 적어주신 이 한 줄의 메시지는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강렬히 남아있다.
과학은 돈이 드는 비싼 학문이다. 또한 어렵다. 그래서 그는 늘 말한다. 과학자는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쉽게 전달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랑하게 돼 결국 과학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려면 가장 먼저 내가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나를 알면 나를 사랑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쓰는 글에는 글쓴이를 알고 싶어 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글을 통해서 사람들은 나를 알게 되고 나를 사랑하게 된다.
최재천 교수님은 자신의 핵심 역량과 가치를 대중적인 글쓰기를 통해 널리 드러냄으로써 퍼스널 브랜딩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나 같은 과학 문외한이 과학자를 알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또한 과학을 조금은 알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타인과 경쟁하지 않는 나만의 글쓰기
최근 몇 년 사이에 글 쓰는 전문가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서 차별성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디자이너라는 정체성 하나만으로 글을 쓰기에는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비슷한 분야의 작가들을 찾아보니 최신 트렌드나 실무에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전문적인 정보 중심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하거나, 디자인 방법론에 능란하거나, 최신 툴을 엄청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다. 실무에서 막 구르면서 몸으로 배운 사람이고, 이론보단 사고로 상황을 헤쳐 온 유형이라 배우면 더 배웠지 알려줄 짬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미 여러 사람들이 가고 있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나는 누군가와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 또한 타인과 경쟁하지 않는 나만의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다시 말해 이진선이라는 이름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는 퍼스널 브랜딩을 구현하고 싶었다. 이는 내 안에 있는 몇 가지의 다른 정체성들을 혼합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모습들을 나열해 봤다.
디자이너는 많지만 책 읽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디자이너는 많지만 글 쓰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책 읽는 사람은 많지만 이미지(그림)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책 읽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삶에 적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르 중심이 아니라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책을 읽는 사람도 별로 없는 듯하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정 주제를 파고들어 구체화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데이터와 생각을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
아는 것을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배우고 성장하기를 좋아한다.
'디자이너'라는 하나의 키워드가 아니라, '디자이너 x 하나의 테마를 파고드는 성향 x 책 읽는 사람 x 취미가 아닌 진지하게 쓰는 사람 x 전문성 x 사고력' 등 여러 가지 키워드를 혼합하면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오직 '나'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이란 다면적인 정체성을 어떻게 조합하고 연출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더불어 다른 사람과 결코 중복되지 않는 오로지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경험들을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지난 몇 개월간 브랜딩을 공부하면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됐기 때문이다.
퍼스널 브랜딩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바로 지식 자산, 감성 자산 그리고 고객 자산이다. 디자인 실력과 책을 읽고 쓰는 능력은 지식 자산에 속한다. 지식 자산만을 가지고 쓴 글은 이성적이면서 전문적이지만 동시에 건조하면서 딱딱하다. 나는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이진선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 성향과 삶의 태도가 드러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즉, '감성 자산'을 활용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식 자산과 감성 자산을 모두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토리에 담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숨기고 싶은 내 약점과 핸디캡까지도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나만의 이야기,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 목소리를 잃어버린 디자이너의 글쓰기 ]나 [ 내향적인 사람도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까 ]와 같은 글을 통해 발성장애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내향적인 성향인 내 모습을 숨기지 않고 공개적인 글로 풀어낼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인정하고 글을 써 밖으로 꺼내는 이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통해 나를 알게 되고, 용기에 손뼉 쳐주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글을 통해 나는 많은 기회와 연결되고 있으며 또한 과분한 사랑과 응원을 받고 있다.
30개의 질문, 30개의 글
나를 연재하는 한달자기발견
최근 자기 탐구를 주제로 하는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 한달 자기발견 ]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자신의 성향, 일, 삶을 돌아볼 수 있는 30개의 질문에 대해 한 달 동안 매일 글로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는 특정 테마를 가지고 온라인에 공개적으로 자기 자신을 연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세월 스스로에게 던졌던 수많은 질문들 중 유의미하다고 판단한 질문들을 선별해 샘플 글과 함께 하루에 하나씩 멤버들에게 공유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런데 최근 1기를 마무리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 지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기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끼고 막연한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지낸다.
온라인으로 공개적인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단지 자기만족 또는 자기 위안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글쓰기 실력을 향상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테마가 있는 글쓰기'는 내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것을 지향한다. 자신의 성향과 강점을 발굴하고, 나를 알리고, 네트워크를 생성하고, 새로운 기회와 연결되어 미래의 내 실질적 자산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자기발견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방향성이다.
스토리를 통해 브랜드에 호감이 생기면 그 브랜드를 계속 지정해서 찾게 되고, 그래서 고객과의 신뢰도가 축적되면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상품으로 재산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너서클 펀더멘탈 <퍼스널 브랜딩> p.114
테마가 있는 글쓰기를 하는 것은 곧 스토리텔러가 되는 일이다. 내 안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가시화하는 것이 곧 퍼스널 브랜딩이다.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 자신의 글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이 용기 낼 수 있도록 기꺼이 나 자신을 자원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렇게 부족한 나도 하고 있다고, 용기를 낸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고 가까이에서 직접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알리고, 사랑받게 할 수 있다면,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차별성과 신뢰감 형성을 위한 글쓰기 10 계명
전문성이 드러나는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오래 두고 보는 여러 번 읽는 글을 쓰고 싶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글, 옆에 있는 사람한테 공유해주고 싶은 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글쓰기 10 계명을 만들었는데, 스스로 설정한 이 몇 가지 기준들은 글을 쓸 때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등대 역할을 한다. 동시에 타인의 글과 구분 짓게 만드는 차별성과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게 만든다.
1. 실제 내 경험을 포함한다.
2.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생각을 풀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3. 이미지를 활용한다. 그림으로 핵심을 요약한다.
4. 내가 할 수 있는 말만 한다. 진정성 없이 억지로 꾸며내지 않는다.
5. 실질적인 유용한 정보를 포함한다.
6. 느리더라도 완성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7. 구성이 잘 짜인 글을 쓴다.
8. 하나마나한 뻔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9. 낚시성 글은 쓰지 않는다.
10. 감정적으로 읽는 사람의 내면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나는 나를 더 알고 싶다. 그리고 나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쓰는 삶을 사는 사람은 개방된 네트워크 위에서 누구나 퍼스널 미디어가 될 수 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실행하고, 더 많이 쓰다 보면 언젠가는 이루리라 다짐하며 또다시 다음 글을 준비한다.
참고도서
이너서클 펀더멘탈 <퍼스널 브랜딩>
연관 글 : https://brunch.co.kr/@jin-lab/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