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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선 Dec 13. 2019

실리콘밸리는 너무 차가워

넷플릭스의 뜨거운 열정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유





넷플릭스가 보유한 세계 최고 품질의 사람들


1997년의 어느 날 새벽 2시, 리드는 패티에게 전화했다. 넷플릭스 창업에 합류하라는 제안을 하기 위해.


"패티, 우리가 정말 일하고 싶었던 회사를 만든다면 멋지지 않을까요?"

"글세요. 리드, 우리가 만든다고 해서 그게 훌륭할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아, 그거야 매일 출근해서 이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테니까."


그 후 패티 맥코드는 넷플릭스에서 최고 인재 책임자로 14년간 일했다. 그리고 CEO 리드 헤이스팅스와 함께 탁월한 성과를 추구하는 넷플릭스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를 설계하고 창조했다. 실리콘밸리 기업의 지침서라 할 수 있는 <넷플릭스의 자유와 책임의 문화 가이드 : 넷플릭스 컬처 데크 Netflix Culture Deck>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가 말하는 넷플릭스의 문화는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


2001년에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넷플릭스는 파산 직전의 상황까지 몰렸다. 회사 직원의 3분의 1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고, 남은 직원들은 두 배로 일을 해야 했다. 극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리드와 패티는 깨달았다. 자신들이 해고한 3분의 1은 사실 그저 그런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었으며, 남은 3분의 2 직원들은 최고의 성과를 내는 선별된 직원들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앞으로 오직 고성과자들'만' 채용하고 최고들끼리 함께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패티는 말한다. '어른'을 채용해야 한다고. 여기서 어른이란 재능 있는 사람, 자기 일에 열중하는 것 외에는 무엇도 바라지 않는 사람,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는 것에 전율을 느끼며 마침내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말한다. 패티는 이런 어른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인센티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믿고 존경하는 동료들과

제대로 된 팀을 구성해

미친 듯이 집중하며

멋진 일을 해내는 것


패티는 이런 정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실리콘밸리에 99%를 위한 자리는 없다


내게도 유능한 동료들과 같은 팀을 이루며 일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일을 사랑하고, 더 나은 결과를 내는 것을 추구하며, 능동적이고,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래전부터 상상해왔다. 그렇지만 이런 바람은 언제나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환상의 팀, 신뢰할 수 있는 동료는 영화나 책, TV 속에만 존재했다.


돌아보면 나는 오직 성과 중심으로만 사고하며 그 기준으로 동료들을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수준에서 일을 처리하고 넘어가려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 심적으로 많이 괴로워했다. 주먹구구로 일하고, 실력 부족을 감정적으로 방어하고, 실수를 숨기고, 우선순위 없이 일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크고 유명한 회사,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팀, 상위 1%의 틈에 끼지 못한다는 생각은 박탈감과 무력감 그리고 소외감을 동반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멋진 팀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있다 해도 소수이며 나에게 그런 행운은 오지 않을 거라며.


5-6년 전의 내가 패티의 글을 읽었다면 그가 리드와 함께 넷플릭스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한껏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요 몇 년 사이 나는 달라졌다. 나와 잘 맞는 동료들과 팀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내가 관심 있게 바라보는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상위 1%에게 집중했던 시선이 이제는 최고의 팀으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된 99%에게 향하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는 소박한 현실에 더 마음이 쓰인다는 얘기다.


책 <파워풀>을 읽는 내내 패티는 과연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99%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자리하고 있는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겠지 싶었다. 세계 최고의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조직에는 엊그제 나랑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방황하는 병아리 신입 사원이 설 자리는 없다.






넷플릭스의 뜨거운 열정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유


사람을 언제든지 더 좋은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것만이 세계 최고 품질의 서비스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일까? 패티가 쓴 <파워풀>과 <넷플릭스 문화 가이드>를 내 기준으로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1. 극단적으로 솔직하고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할 것. 넷플릭스에 줄타기랑 험담은 있을 수 없으니까. 단, 의견을 낼 때는 구체적인 대안을 함께 제시해야 하는 거 알지?


2. 어제보다 오늘 더 어려운 문제를 마주할 때 전율을 느끼시는지. 우리는 끈기를 바탕으로 탁월한 성취를 추구하는 사람들. 그저 열심히'만' 할 거면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는 것 기억해. 문제란 해결하라고 있는 거지 발견'만' 하라고 있는 거 아니니까.


3. 어지간한 성과를 내는 사람은 퇴직금 많이 줄 테니 나가주시길. 그 자리에 탁월한 성과를 내는 스타급 인재를 데려와야 하니까!


4. 돈 때문에 이직할 일은 없게 해 줄게. 우리는 실시간으로 업계 동향을 살피고 최고 연봉을 줄 거거든. 그러니 딴생각하지 말고 넷플릭스의 성공에만 집중해.


5. 자, 이렇게 너랑 비슷한 부류의 최고 고성과자들만 모아놨어. 신나지? 너네끼리 경쟁할 필요 없어. 어차피 다 최고니까. 서로 돕고 영감을 나눠. 마치 최고의 스포츠팀처럼.


데이비드 데스테노가 <신뢰의 법칙>에서 말한 것처럼 능력 부족은 배신과 기능적으로 동일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세계 최고는 세계 최고들이 모였을 때만 가능하다. 세계 최고들이 만든 혁신과 서비스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삶, 더 편리한 삶을 산다. 평범한 99%가 실리콘밸리의 뜨거운 열정으로부터 무한한 수혜를 받으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나는 옆에 있는 동료, 막내 디자이너, 친구, 동생들이 조금 부족하다는 이유로 언제든 새 사람으로 대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뜨거운 넷플릭스의 열정이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야망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 실리콘밸리는 너무 차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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