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다시.

2003년의 홍콩과 젊었던 나

by 일상의 탐험가

내 나이 스물일곱이던 해,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홍콩 배우 장국영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학생 때부터 그 무렵까지는 홍콩 영화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아비정전〉...

비디오 가게 진열대 한쪽은 항상 홍콩 영화 차지였다. 이 영화들을 보지 않고 자란 내 또래가 과연 있을까

우리는 주윤발이 성냥개비를 입에 문 장면에 열광했고, 뜻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중국 노래를 들으며 이유 없이 가슴아파하기도 하고 울고 웃었다.

그 시절 가장 인기 있는 남자 배우를 꼽으라면 유덕화와 주윤발, 그리고 장국영이었다.

그중에서도 장국영은 유난히 여자아이처럼 곱상한 얼굴에 항상 어딘가 슬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여자들이 그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장국영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한 초콜릿 회사가 그를 모델로 광고를 찍었다. 초콜릿 이름은 ‘투유’.

비를 맞으며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그의 얼굴에 트레이드마크인 슬픔이얹혀 있었고 광고 엔딩에에 남는 말은 하나였다.

사랑을 전할 때는 ‘투유’
여중고생들은 장국영의 사랑을 전해받은 듯 그 초콜릿을 사 모았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회사에서 일하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슬프다는 말로는 부족했고 믿기지 않는다는 말도 맞지 않았다. 지금까지 함께 시대를 살았던 지인 하나가 세상에 사라져버린 기분이었다.

마음 한쪽이 툭 하고 떨어져 나가듯 충격을 받았다.

그 주 토요일 아침, 집에서 멍하니 신문을 넘기다 작은 광고 하나를 보았다.

‘홍콩 여행 특가 299,000원.’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홍콩 갈래?”

일초의 망설임없는 시원한 대답이 곧 돌아왔다.

“그래, 가자.”

그렇게 우리는 아무 준비도 없이 홍콩에 갔다.

공항에서 서로를 보자 약속이나 한 듯 웃음이 먼저 터졌다. 너무 속전속결로 온 여행이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4월의 홍콩은 덥고 습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몸에 물기가 들러붙는 기분이었다.

밤이 되자 고층 빌딩마다 서로 앞다투는 것처럼 화려하고 눈부신 불을 켜고 있었다. 마치 화려한 레이저 쇼를 보여주듯 환했다. 마치 낮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마주한 굉장한 불빛 앞에서 나는 잠시 어질했다. 눈부셔서라기보다 현실에서 조금 밀려난 느낌 때문이었다.

X세대였던 우리는 남들의 시선 같은 건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 컨셉을 정해 놓고 사진을 찍어댔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유난스러웠고, 그때는 그게 자연스러웠다.

다음 날 우리는 가장 먼저 장국영의 마지막을 지켜본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로 갔다. 호텔 앞에는 꽃과 편지들이 쌓여 있었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틈에서 나도 왠지 슬퍼지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 틈에 섞여 한참을 서 있었다.


또 우리는 홍콩에서 유명한 A급 명품 모조품을 판다는 곳을 알아내 몇 개의 문을 지나 은밀하게 숨어 있는 가게를 구경하기도 했다. 굳이 살 생각은 없었지만 그저 그런 데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그러다 수중의 돈이 떨어져 시티은행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고, subway가 지하철이 아니라 지하도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홍콩은 영국식민지였으므로) 같은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기도 했다.

여행은 그렇게 별일 아닌 일들로 자꾸 방향을 틀었다. 그럼에도 서로 불평하지 않았고 웃음으로 보냈다.

그 나이가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2026년 1월.

시간이 흘러 나는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철이 덜 든 채로 23년 만에 다시 홍콩을 찾아왔다. 마치 안지는 오래되었으나 연락이 끊긴 친구처럼 그냥 홍콩이 궁금했다.

젊은 날의 취기 같은 것을 다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홍콩을 구석구석 걸으며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홍콩도 많이 변해 있었다. 분명 처음이 아닌데, 마치 처음 온 것처럼 새롭고 낯설었다.

그럼에도 스물세 해나 지났는지 이상하게 기억이 또렷해지는 장소들이 있었다.

분명 그곳 어딘가에는, 젊은 내가 웃고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본 홍콩의 야경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여전히 눈부실 만큼 화려한 불빛을 보는 순간, 깊이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먼저 반응했다.

그때의 공기와 소음, 별일 아니었던 사소한 모든 풍경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스물 중반에 아무 계획도 없이, 마음이 내키는 대로 덜컥 이곳에 왔던 내가 바로 그 불빛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잊고 지내던 사진 한 장을, 우연히 서랍 속에서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내가 홍콩을 덜컥 찾아온 이유를.

아마도 나는,젊었던 나를 조금 그리워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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