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타로상

桃太郎 (もも)

by 일상의 탐험가

하루의 일과를 모두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이불을 들추었다.

막 몸을 눕히려던 그 짧은 틈에 단어 하나가 번개불처럼 번쩍 스쳐 지나갔다.

‘모모타로상'

누군가 곁에서 낮은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뜬금없이 떠오른 단어 뒤로 자동으로 재생되듯 노래 한 소절이 이어졌다.

“모모타로상, 모모타로상, 오코시니 츠케타 기비당고….”

인지도 못하고 있을만큼 깊숙이 꽁꽁 묶여 있던 기억 한편이 풀려나 멈추지 않고 노래가 되어 흘러갔다.

급하게 휴대폰을 찾았다. 이런 기억은 붙잡지 않으면 사라진다.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었다. 생각나는 대로 가사를 적다가, 확인하듯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했다. 모모타로상. 모모타로상은 ‘복숭아 동자’라는 뜻이라고 했다.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어릴 적, 잠들기 전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정확한 줄거리는 떠오르지 않았다.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던 부부 앞에 복숭아 하나가 떠내려오고, 그 안에서 아이가 나왔다는 이야기의 처음과, 할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불러 주시던 노래의 첫 소절만 남아 있었다.

한동안 그 이름을 되뇌며, 또렷하게 기억나는 첫 소절만을 나지막이 반복해서 읊조렸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할머니까지 함께 떠올랐다.


나는 어릴 적, 잠자리에 누워 할머니에게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좋아했다.

아마 누구나 비슷했을 것이다.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모모타로상 하나였다. 다른 기억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것만 조용히 남아 있었다. 마치 긴 시간을 건너온 문화재처럼.

이야기의 내용은 이미 희미해진지 오래이고, 내가 기억하는 것은 모모타로상이 복숭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과 할머니가 불러 주셨던 노래의 첫 소절, 딱 거기까지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 선명한 컬러사진처럼 남아 있는 안동 할머니 집.

아궁이에 불을 너무 많이 때 온돌방은 펄펄 끓는 주전자처럼 뜨거웠다. 바닥에 몸을 바로 대지 못해, 이불 위에 누워 있어야만 했던 때가 떠올랐다.

시골이라 밤공기는 차가운데 바닥은 뜨거웠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누워 “할머니, 오늘도 옛날이야기 해 주세요.” 하고 말하면, 할머니는 내가 잠들기 직전까지 이야기를 멈추지 않으셨다. 단 한 번도 “이제 더 해 줄 이야기가 없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나는 할머니가 분명 어딘가에 이야기 보따리를 숨겨 두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나는 첫 손녀였다. ‘첫’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했을 텐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에 태어나 자연스럽게 그 빈자리까지 채우게 된 손녀였다. 한 사람이 사라지고, 그 다음에 온 사람이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앉듯이. 할머니에게 나는 그런 존재였다.

내가 받은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은, 고모와 삼촌들의 증언 같은 일화 속에 남아 있다.

“할머니가 너를 업을 때, 얼굴을 계속 보려고 일부러 앞으로 업었어.”

“네가 안고 자던 베개를 개울에 빠뜨려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는데, 할머니가 그 찬물에 들어가 베개를 주워 와 밤새 말리셨어.”

어릴 적 기억을 낱낱이 떠올릴 수는 없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천천히 데워진다. 그 사랑이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고서야, 이런 느낌은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직접 기억하는 장면들도 있다. 엄마에게 혼날 때면 나는 할머니 뒤로 쪼르르 숨었고, 할머니는 늘 내 편이 되어 엄마와 나 사이에 서 주었다. 내가 없는 사이 할머니가 다시 안동으로 가실까 봐, 할머니 가방을 몰래 들고 학원에 간 적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대부분의 기억은 사라졌는데, 몇 가지 장면들만은 이렇게 선명한 컬러 영화처럼 남아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하다.


내 기억 속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병과 싸우던 시간이었다.

암이 가족력인 집안에서 누군가의 병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 대상이 할머니였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그런데 그 기억은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떠올리는 할머니의 투병 모습은 고통에 잠긴 얼굴이 아니라, 방 한가운데에 담담히 앉아 있던 모습이 전부였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야 알 것 같다. 할머니는 생각보다 훨씬 씩씩하고, 담대한 사람이었다. 나이 쉰 중반에 남편을 잃고도 다섯 남매를 홀로 키워낸 사람.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인생이 고달프지 않았을 리 없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가장 고통스럽다는 췌장암에 걸렸으니 어쩌면 억울해서 분통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끝까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기보다는, 옅은 미소가 먼저 나온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하늘처럼 맑고 투명하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을, 가장 깊은 곳에서 다시 끄집어내 준 단어, 모모타로상.

기억은 흐릿해져도, 사랑받았던 감각은 몸에 남는 법인가 보다.
할머니의 나이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오늘 밤 불현듯 찾아온 그 노래 덕분에 내 마음은 다시 안동 할머니집의 뜨거운 아랫목처럼 데워졌다.

작가의 이전글홍콩,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