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 같은 자리에 서는 일
중학생 시절, 가끔씩 누리던 작은 낙이 하나 있었다. 작은고모와 함께 대구 동성로로 나가는 일이었다.
서울로 치면 강남이나 명동쯤 되는 동성로는 늘 사람들로 들끓어 매일 축제가 열리는 곳 같았다.
버스에서 발을 내딛는 순간, 거리의 음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쇼핑을 부추기듯 경쾌한 리듬이 가슴을 두드렸고, 심장은 이유 없이 빨라졌다. 길가에 빼곡히 늘어선 좌판에는 헤어밴드와 작은 액세서리, 별처럼 반짝이는 쥬얼리들이 쏟아져 있었고, 내 눈은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몰라 분주했다.
그곳은 사춘기의 불안과 설렘이 뒤섞인 소녀에게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게 해 주는 창이자, 현실 속 신세계였다.
그때 고모가 낮게 말했다.
“아… 정신없고 힘들어.”
3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그 사소한 말이 지금까지 또렷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그때의 나는 그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곳에서 왜 ‘정신없다’는 말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음악은 신났고, 붐비는 거리는 내게 그저 즐거움이었다. 고모의 말은 그 풍경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그때의 고모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정신없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요즘의 나는 소리에 예민해졌다. 작은 알림음에도 신경이 곤두서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겹치는 공간에서는 생각보다 먼저 피로가 밀려온다. 대화에 집중하기보다 ‘언제 나갈 수 있을까’를 계산하느라 정작 대화를 놓칠 때도 있다.
운전 중 듣는 라디오에서 DJ의 목소리가 조금만 높아지거나 멘트가 많아져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가사가 또렷이 들리는 노래보다, 그저 배경처럼 흐르는 클래식 채널을 틀게 된다.
단체 대화방에 쌓여 있는 읽지 않은 숫자 역시 부담이다.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그 숫자는 나에게 읽어야 할 의무를 요구하는 듯하다. 어느 날은 그 방을 아무 설명 없이 빠져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실제로 견디지 못해 도망치듯 나온 적도 있다. 몇 년간 봉사하던 성당 전례부를 결국 그만두었다. 겉으로는 다른 이유를 말했지만, 사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던 메시지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년 동안은 아무렇지 않았던 일들이, 어느 순간부터 알레르기처럼 나를 자극했다. 봉사 차례가 다가올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쁨이 아니라 부담 때문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오래전에는 미처 몰랐던 소음의 무게가, 이제는 분명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그날 동성로에서 고모가 했던 말은 그렇게 나의 시간이 되어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약속이 빼곡히 차 있으면 기대와 함께 피로도 함께 밀려온다. 마음 한편에서는 그 많은 일정 중 하나쯤은 취소되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 그렇게 생긴 빈 시간 앞에서야 비로소 숨이 놓인다.
예전의 나는 “집에서 뭐 해요?”라는 질문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라고 답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선택하는 것도, 삶을 지키는 한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변했을까.
동성로 한복판에서 고모가 내뱉었던 그 말처럼, 삶은 사람을 조금씩 지치게 한다.
그때의 나는 설렘 쪽에 서 있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밝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은 나이였다. 고모는 이미 피로쪽에 가까워져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자 자리가 바뀌었다. 나는 어느새 고모가 서 있던 자리에 서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