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주의자'의 사순

by 일상의 탐험가

나는 가톨릭 신자이다.
세례받은 지는 14년 차 정도.

나름 열심히 신앙의 여정을 걷고 있다.

성경 구약에 나오는 씩씩하고 당찬 여왕 에스테르가 나의 세례명이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정말 내 세례명답게,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혼자 씩씩하게 성당을 찾아가 교리 과정을 거쳐 세례를 받았다.

내 신앙생활은 ‘성당을 그만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을 크게 흔들거나 요동치게 한 사건 하나 없어서 덤덤히 앞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다.

단조롭고, 지극히 평범했다.

한 가지 정도의 봉사활동을 하고 주일미사는 빠진 적이 없으며, 가급적 평일미사는 3일 이상 가려고 노력하는 정도가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전부다.

눈에 띄는 거창한 봉사도, 극적인 신앙체험도 없다.

그런데도 신앙의 틀 안에서 벗어난 적은 없는 것 같다.

가톨릭 신자로서 지켜야 할 원칙을 철저히 하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고해성사를 하고, 주일과 대축일 미사를 빠지지 않는 것. 그것 역시 나에게는 중요한 원칙이다.


예전에 여름휴가로 경상도의 어느 작은 도시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휴가 기간에 성모승천대축일이 끼어 있었다.

나는 하루 전날부터 성당을 검색하며 전화를 돌려 미사 시간을 확인했다.

여행지 근처에는 성당이 없고 공소만 있었는데, 마침 대축일 미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여행지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성당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대축일 미사에 참례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나를 두고 “광신도”라고 말했다.

여행지에 와서까지 꼭 그래야 하느냐, 한 번 빠진다고 지옥에 가느냐며 웃으며 놀렸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한 것은 남편의 말처럼 뜨거운 열정에 휩싸인 광신도라서가 아니라,내가 지켜야 할 의무를 끝까지 지키고야 마는 타고난 성격 때문이었다.

사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내 성향을 신앙심이 깊어서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정말 부끄러움에 마음속으로 이렇게 해명하고 싶어진다.

“저는 원칙주의자라서 그런 거예요.”


올해도 부활절을 앞두고 절제와 참회의 사순 시기가 찾아왔다.

늘 그랬듯 재의 수요일에 성당에 가 머리에 재를 얹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이번에도 ‘원칙주의자’답게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절제를 정했다.

필요한 것이 아니면 소비하지 않기

비판하기보다 칭찬하려 노력하기

인정받고 싶은 욕심과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 버리기

거창하게 정해놓고 지인들에게 선포하듯 인스타그램에 게시물로 올리기까지 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성격이라 이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쇼핑을 줄이는 것도, 말을 조심하는 것도, 마음을 다잡는 것도 결심만 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건을 비우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고,작 어려운 것은 ‘마음’을 비우는 일이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나는 백화점에서 봄옷을 보고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옷을 샀다.

손에 든 쇼핑백을 보며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인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까지 올리며 자신있게 다짐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손에 든 쇼핑백보다 마음이 더 무겁고, 괜시리 슬퍼졌다.


문제는 쇼핑만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잘하려는 욕심은 여전했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도 여전히 놓지 못했다.

대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면 참지 못했고, 더 이해하고 칭찬하겠다고 다짐해놓고도
속으로는 비교하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듯 갑자기 베드로가 떠올랐다.

“모두가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장담했지만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사람.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누구보다 자신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졌던 사람.

나는 순간 베드로가 되어 있었다.

나 자신에게 호언장담했던 약속들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너무 쉽게 무너졌다.

다짐은 열정적이고 단호했지만 의지는 약한 베드로처럼.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얼마나 처참했을까.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었나 싶어 마음이 무너졌다.

결심은 거창했지만 의지는 생각보다 깊지 못했다.

‘나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호언장담하며 믿어왔는데 그 믿음마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보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부끄럽고 괴로웠다.


어쩌면 이번 사순은 내가 얼마나 잘 지키는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자주 넘어지는 사람인지를 인정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조용한 흔들림이었을까.

나는 완벽한 원칙주의자가 아니었다.

원칙으로 나를 세워왔지만, 결국 나를 붙들어 주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은총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어디로 돌아와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 대신 기도를 한다.

더 잘하겠다는 기도보다,

넘어져도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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