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부자

by 일상의 탐험가

평소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왜 그렇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느냐는 말,
요즘에는 또 무엇을 배우고 있느냐는 말,
참 재주가 많다는 말들.

대체로 그것들은 호의적인 평가다. 나는 아마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물론 때로는 조금 부정적인 의미로 평가를 받을 때도 있다. 안정적이지 못하다거나,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다니는 사람 같다는 식이다. 누군가는 나를 취미를 수집하는 ‘취미부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마 그 말 속에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별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뜻도 조금쯤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런 평가들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타인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들은 내가 겪어온 시간까지는 보지 못하고, 그저 지금 보이는 모습만 보게 마련이니까.


가끔은 스스로에게 묻기도 한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쉬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하고.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여유라는 것은 어느 날 슬그머니 빠져나가 버린 것 같다.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게 없어졌다. 대신 나는 자꾸만 나를 몰아세우는 쪽으로 살아왔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혼자 앞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가끔 내 삶을 한 장의 그림처럼 생각해 본다.
도화지 위에 빈 곳을 남겨두지 못하는 사람.

여백이 있으면 공연히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해서, 거기에도 무슨 그림이든 색이든 채워 넣어야 안심이 되는 사람.

아마 내가 꼭 그런 사람인 모양이다. 그것은 애써 만든 습관이라기보다, 타고난 성미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시작은 좀 더 분명한 데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회사를 그만두던 때. 아니, 전업주부가 되던 그 무렵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나는 세상과 나를 이어주던 가느다란 줄 하나가 조금씩 헐거워지는 기분을 자주 느꼈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물건이 생기고, 새로운 말이 생기고, 새로운 방식이 생겨났다. 그런데 나는 그 빠른 흐름 바깥에 멀거니 서 있는 사람 같았다.

세상은 자꾸 앞으로 가는데, 나만 제자리에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선뜻 말로 옮기기 어려운 상실감이었다.

나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들을 잠시 접어두고, 하루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아이의 시간에 맞춰 살아간다는 것이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내 시간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그 기분은 마치 넓은 도화지 위에 선 하나, 그리고 동그라미 하나만 그려진 그림을 오래 바라보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분명 그것도 하나의 그림이지만, 내게는 어딘가 덜 완성된 것처럼 느껴졌다.

도화지를 빈틈없이 채우고 색을 겹겹이 쌓아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던 내게, 그런 그림은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무언가를 더 그리고 싶은 마음은 계속 내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색 하나를 더 얹고, 선 하나를 더 보태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특히 젖먹이 아이를 키우던 시절은 더욱 그랬다.

하루의 대부분을 그저 아이를 바라보며 보내야 했다. 아이가 울면 이유를 짐작해 보고, 배고파하면 먹이고, 잠들면 그제야 조용히 주변을 정리했다. 아이의 본능이 하루의 리듬을 만들었고, 나는 그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거의 사 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내 시계는 어딘가에 걸린 채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자라 어린이집에 다니고,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잠시 놓고 있었던 세상과 이어진 끈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손에서 놓쳐버린 실 끝을 찾는 사람처럼, 나는 다시 조금씩 바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려면 나름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막상 생각해 보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예전에 일했던 홍보 마케팅 분야는 늘 새로운 흐름과 감각을 요구하는 곳이었다. 트렌드는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오랜 시간 그 흐름에서 내려 서 있었던 셈이었다.

오랜 시간 일을 쉬었던 사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경단녀’라는 이름표를 다시 달고 그곳으로 돌아가기에는, 솔직히 말해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 내 안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제는 그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내 마음 한켠에 작은 흠집을 냈다.


예전에는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자신감이었는지, 아니면 세상을 잘 몰랐기에 가능했던 막연한 낙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나의 가능성과 능력을 의심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내가 멈춰 서 있던 시간 동안, 조금씩 작아지고 뒤로 물러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깊숙이 숨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부끄러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오랫동안 숨어있어서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나서기가, 스스로에게도 조금은 민망해졌는지도 모른다. 그 당당함과 자신감이라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대신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들 눈에는 팔자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했다. 배부르고 할 일 없어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본다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그렇다.

그림이 좋아 색연필화를 배우러 다니고, 어느 날은 어릴 적 치던 피아노가 문득 생각나 피아노 학원을 등록한다. 또 어떤 날은 책이 읽고 싶어 독서 모임에 나가고, 어떤 날은 전혀 다른 것에 마음이 끌리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림과 피아노와 독서가 서로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다.

별로 상관도 없는 것들을 그저 내키는 대로 배우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걸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언젠가 카페를 차리겠다는 목표로 커피를 배우고, 인테리어를 배우고, 마케팅과 홍보까지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목적 없는 배움이니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가 조금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돈을 쓰며 배우러 다니는 삶이 좋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며 마음이 가라앉아 있던 날들이 더 많았다.

이 많은 것들이 결국 아무 쓸모없는 시간으로 남는 건 아닐까.
나는 그냥 시간을 어떻게든 소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배우는 척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정해진 코스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수영이 아니라, 그저 물속에서 방향도 모른 채 팔만 휘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조금씩 작아진다.

남들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데, 나는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방향도 없이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모습이 마치 갈 곳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나서는 쪽이 조금은 더 살아 있는 모습 아닐까 하고.

대단한 이유는 없어도, 거창한 목표는 없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보고자 애쓰는 증거 같아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달리기를 통해 삶은 경쟁이 아니라 지속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어디에 도착하느냐보다,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어쩌면 나에게도 배우는 시간은 그런 의미인지 모른다. 어디에 쓰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멈춰 있지 않기 위해 배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서로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것들을 마음 내키는대로 배우러 다니면서, 그저 취미나 하나 더 늘리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 배움들이 서로 연대하여 시너지를 이루며 내 인생의 분기점이 될지, 아니면 그저 재미로 시시하게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낸 '의미없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나는 그 시간을 그냥 보내지는 않았다고,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애쓰며 살고 있었다고, 훗날 스스로에게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 정도의 변명쯤은, 내 삶에도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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