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이웃이라는 이름

노스텔지어 아날로그 8090년대

by 일상의 탐험가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알고리즘에 이끌린 듯 쇼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실험카메라였을 것이다. 취업을 앞둔 듯한 한 젊은이가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넥타이를 매지 못해 당황한 채 서 있고, 그 모습을 본 지나가던 어른들이 못 본 척하지 않고 도움을 건네는 장면이었다.

어떤 이는 직접 넥타이를 매어 주었고, 방법을 잘 모르는 이는 지나가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면접 잘 보고 오라며 등을 두드려 주고,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작은 팁까지 덧붙이는 모습들이 이어졌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장면이었다. 영상 아래로 주르륵 달린 댓글들 가운데, 유독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이게 우리나라지. 끈끈한 정으로 이어진 우리나라.

현관문을 다 열어놓고 살아도 안전했던 시절, 이웃끼리 함께 김장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수시로 나누며 왕래하던 사람들, 밤늦게까지 실컷 놀아도 걱정 없던 그때…'


정말 그랬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없으면 옆집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특별한 음식이 생기면 넉넉히 담아 누구네 집에 좀 갖다주고 오라는 심부름도 곧잘 했다.

동네를 다니며 이웃 아줌마나 아저씨를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고, 그들은 마치 우리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소소한 안부를 물어주곤 했다.

반상회가 있는 날은 어린이들에겐 작은 축제 같은 날이었다. 어른들이 모두 모여 있는 틈을 타, 한 집에 모여 장난을 치며 마음껏 놀던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 그리고 나 역시 엘리베이터에서 낯익은 사람을 만나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에 머문다. 우연히 맛있는 음식을 해도, 선물로 과일이 잔뜩 들어와도 나누기엔 괜히 부담이 될까 여러 번 망설이다 결국 마음속으로만 접어 두게 된다.

그것뿐인가. 세상이 흉흉해지다 보니 누가 간식으로 무엇을 주더라도 받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된다. 어린이들의 작은 축제 같았던 반상회도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현관문은 늘 굳게 닫혀 있고, 어쩌다 문이 열려 시선이라도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는 정도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한 동에 수많은 가구가 함께 사는 공동체인 듯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각각의 닫힌 개인의 집들이 모여 있는 곳처럼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은 아마 그 시절의 끈끈한 이웃의 정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를 살아가며 그 시간을 지나온 내 또래의 사람들만큼은, 아직도 마음속 어딘가에 그때를 품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응답하라 1988〉이 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학창 시절 귀에 익숙했던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이 다시 무대에 오르는 가요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으면,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절을 다시 불러내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서로를 믿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건네던 그 시절의 온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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