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지증후군
따뜻한 봄이 찾아온 3월이었다.
발코니 쪽 안마의자에 앉아 오른편의 큰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기울며 하늘은 불에 덴 것처럼 붉어지고 있었다.
‘하루가 금세 가는구나.’
이 시간쯤이면 저녁 준비로 분주했을 터였다. 하지만 큰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로 떠났고, 작은아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해 야간자습을 하느라 밤 열 시가 되어야 집에 온다. 남편 역시 요즘은 바쁜지, 저녁은 먹고 들어오겠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완벽한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다. 입가에 저절로 번지는 미소를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학원에 데려다주며 매 끼니를 준비하느라 발을 동동 굴리던 나날 속에서, 얼마나 그리워했던 순간이던가. 혼자 조용히 머무는 이 시간을 말이다. 그러나 그 미소와 감정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썰물이 밀려오듯 어느덧 어둠이 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갑자기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불을 켤 틈도 없이 나는 그 어둠 속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알 수 없는 서늘한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집 안이 문득 낯설어졌다.
감당하기 어려운 외로움에 발걸음이 어느새 큰아이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아이 없는 방이 조용히 비어 있었다. 주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방이 유난히 휑하고 커 보였다.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침대에 누워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사진 액자에 시선이 멈췄다. 어린아이 같던, 개구진 딸이 자라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이었다. 그제야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빨리 커서 집을 떠날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잘해줄 걸.
1998년 늦가을, 대학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외국계 회사에 취직한 나는 10년 가까이 승승장구하던,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머릿속에는 반짝이는 나만의 미래가 그려져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하며 살아가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아이를 낳고부터 산산이 조각났다. 조그마한 아이를 바라보니 남에게 맡기고 회사에 출근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그 무렵 친정아빠는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다시 일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내 커리어는 끝이 났다.
생각지도 못하게, 손쓸 틈도 없이 시시하게.
아이를 안고 가는 곳이면 나는 그냥 애기 엄마, 또는 아줌마였다. 처음 들어보는 ‘아줌마’라는 소리가 얼마나 가슴이 저릿했던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을 붙잡고, ‘나는 그냥 아줌마가 아니라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고 얼마나 인정받는 사람이었는지’를 설명하고 싶은 충동이 매번 일었다.
내게 ‘아줌마’는 그랬다.
무능력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혼자만의 지나친 비약에 빠지게 만드는 단어였다.
잘 빠진 수트 대신 늘어진 면티를 입고,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달래고 어르고 집을 치우다 보면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아무것도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그저 그런 똑같은 하루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흐트러진 모습으로 머리보다 몸을 쓰며 허겁지겁 살아가는 내 인생이 그냥 싫었다.
그 우울감과 짜증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향했다. 아이의 본능에 맞춰 돌아가는 내 일상이 싫었고, 나를 주저앉힌 것이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었지만, 시간과 약속은 번번이 미뤄지거나 깨졌다. 낮잠이라도 자줘야 내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어린아이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부터가 어리석은 일이었다. 약속이 있는 날이면 아이가 갑자기 아프기도 했다.
아이의 시계와 내 시계는 너무도 달랐다. 사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시기였다. 나만 의미 없이 밀어내고 있었을 뿐.
꽤 오랜 시간 나는 엄마로서 낮은 자존감 속에 머물렀다.
대학생이 되어 독립한 큰아이의 침대에 누워 있으니, 이제야 이런저런 생각과 후회가 겹치며 마음이 몹시 시리고 아파왔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고, 커리어우먼으로서의 모든 것을 접어야 했던 그 상실감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아이는 아마 모를 것이다. 어쩌면 너무 어릴 때의 일이라, 서툴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나고 보면 대부분의 일은 아쉬움과 후회로 남기 마련이지만, 유독 초보 엄마였던 내 모습은 흑역사처럼 마음에 남아 있다.
모든 순간에는 저마다의 때가 있고, 누구나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나만 특별하게 건너뛸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여자라면 경험하게 되는 엄마의 역할일 것이다.
그때, 그 시간을 조금 더 충실하게 보냈으면 어땠을까. 아이가 성장해 독립할 때까지, 끝이 있는 일이었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이었을 텐데...
버티고 참아내며 보내기보다 조금 더 최선을 다하고, 조금 더 즐길 수는 없었을까.
큰아이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해는 완전히 저물어 집 안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불을 끄지 않은 채, 잠시 누워 흐트러진 이부자리도 정리하지 않고 그 방을 나왔다.
불이 꺼지고 가지런히 정돈된 이불을 마주하면, 주인을 잃은 듯한 이 방이 더 비어 보일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