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지인의 강력한 추천으로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생각나는 키워드는 죄책감, 책임감, 복잡함과 단순함이었다. 분명 나는 이 영화를, 나아가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내가 이해한 서사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오펜하이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대학원생 시절의 오펜하이머는 우주의 질문을 끌어안은 채 불안한 시절을 보낸다. 진은 그에게 복잡한 척하지만 실은 단순하다고 이야기한다. 꽃을 가져오지 말라던 진에게 항상 그가 꽃을 갖고 갔던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를 향한 시선은 모두다 제각각이다. 천재이기도 했으며, 그럼에도 앞을 볼 줄 모르는 지혜롭지 않은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심하고 이기적인 인물이 되기도 하고, 이 세계 너머의 세계를 볼 줄 아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수락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였을지,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였을지. 고향을 그리워했던 모습 속에 힌트가 있을까? 양자역학이 확률의 세계라는 말처럼, 그는 확실히 어떤 쪽의 인물이라기보다 %로 표현하는 게 더 나은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애국주의자이기도 하면서 공산주의자로 비춰졌던 그의 모습처럼.
‘워싱턴에 나도 갈까요?‘
실험이 성공하고 그로브스에게 건넸던 그 말을 통해, 어떤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브스는 이를 거절하고 홀로 워싱턴으로 떠난다.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나서야 그로브스는 그와 연락을 주고 받는다. 그의 역할이 다했던 것이다. 그 후 오펜하이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 짐짓 연설가의 모습을 하며 대중의 환호를 받지만 그의 모습은 기뻐보이지 않았고 그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내딛는 발에 원자폭탄에 희생된 사람들이 가루가 되어 밟힌다.
‘그 속은 아무도 모르지. 자넨 아나?’
영화 속에서 오펜하이머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진이 말했듯, 짐짓 복잡해보이는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명쾌해지진 않을까 싶다. 그가 명성을 위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도 맞지만 과학자로서 연구를 위해 참여한 것도 사실이다. 명성에 취했음은 군복을 입었던 그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며, ‘자네의 모습을 지켜’라는 라비의 말을 듣고 다시 환복한 모습에서 과학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원자폭탄의 개발이 전쟁을 끝내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 피해를 목격한 순간 더 큰 연쇄반응을 막고자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도 모습은 달라도 각자의 모순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맺으며
영화를 보며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보았다. 자신이 주도한 프로젝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면, 그 무게를 한 개인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남은 삶을 보냈을까. 누구도 함께 질 수 없었던 그 책임을 홀로 껴안고 그는 살아갔을 것이다. 어떠한 속죄에도 편해지지 않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실험에 성공하여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지만, 동시에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던, 7월의 어느 날을 오펜하이머는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