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를 보고
불안 속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분명 바라마지 않는 삶이었는데, 불확실함을 마주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불안한 마음이 커져간다. 불안함에 잠식되어 이도저도 아닌 삶을 사는 것은 싫은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후기는 영화 얘기보단 영화 속 대사에서 시작된 내 이야기들이 더 많을 예정이다.
“고독과 고통과 죽음의 불안이 생생해”
영화 속 “베르히만”이라는 영화 감독의 성향도 그러했나보다. 처음엔 가상의 감독인 줄 알았는데 실존하는 감독이었다. 크리스는 베르히만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감독에 대해 ‘자신의 어둠이 아니라 단 한번만이라도 반대편을 봤다면’이라 말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걸까? 그리고 언제 행복을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는가? 도전을 하여야만 살아있는 삶일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건지에 대한 고민들. 나는 그곳에서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가끔 찬란히 행복했던 이야기의 마지막 장”
20대의 마지막 순간을 지나고 있다. 사실 이미 서른이 된 지 한참은 된 것 같은데, 만 나이로 인해 이미 끝났어야 할 20대로서의 시간을 연명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렸을 때의 나는 어떤 삶을 꿈꿨었을까. 지금의 내 모습이 어린 내가 꿈꿨던 그 모습일까? 연초만 해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 차있었는데, 자신감 따윈 이미 온데간데 없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기 바쁘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들은 어느 새 내게 책임을 요구하고 있었고, 삶의 무게는 어느 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씩 짐이 된 그 무언가들을 내려두고 있다. 감당할 수 있을만큼, 기꺼이 감당하고 싶은 것들만 함께하고 싶다. 이 순간을 돌아봤을 때 찬란하게 기억될까? 헤매고 헤매다 길을 찾은 것 같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영화가 되기는 할까?”
크리스의 물음에 토니는 “그건 당신 손에 달렸지.”라고 이야기한다. 결말을 맺는 걸 도와달라는 크리스의 부탁에도 토니는 그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거절한다. 결국 내 이야기는 내가 맺어야 한다. 나의 이야기는 지금 어디까지 와있을까? 열심히 잘 왔고, 이제 결말만 남겨두고 있는데 여기까지 오는 것이 힘에 부쳐 포기하려는 건 아닐까 싶다. 조금만 더 힘내보면 되는데. 나의 이야기를 잘 맺는 건 결국 내 손에 달린 문제다. 힘들면 조금 쉬었다가 하자.
“이미 한 얘기를 반복할까봐 겁나.”
3개월 가까이 매주 인스타그램을 통해 회고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 안하게 되었다. 회고를 위한 회고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새 비슷한 말들의 반복이라고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맞이한 삶도 어느 새 일상이 되었고, 새로운 삶이 일상이 되자 하고 싶던 일들도 일상의 일들이 그러한 것처럼 때론 지난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계속 가보고자 하는 것은 아직 내가 하고자 하는 업의 본질에 미치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가보자. 성장은 꼭 새로움 속에서만 자라진 않는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보이는 단조롭고도 지루한 일상에서도 조금씩 피어나는 것이 성장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