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를 보고
인간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게 있다면 그것은 집일테다. 과거에는 동굴이었고, 지금은 아파트, 빌라, 원룸, 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미소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텐트를 짊어매고 야영을 선택한다.
민지가 미소에게 이야기했듯, 그 선택은 꽤나 유니크한 선택으로 보인다. 저마다의 전시된 행복을 마주하며, 마땅히 충족되길 원하는 무수히 많은 현대의 행복의 기준 속에서, 그녀의 안식처는 아주 심플하다. 위스키, 담배, 한솔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들만 있다면, 그녀는 살아갈 수 있다.
미소가 만나는 대학교 친구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 겉보기에 번듯한 안식처에서 살아가듯 보이지만, 그안에서의 개인은 때론 불행하다. 그들의 공통점은, 행복을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떠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술로 지새는 대용, 경제력이 있는 남편의 눈치를 살피는 정미(그녀는 그의 경제력을 마치 자신의 것인양 굴지만, 타인에 의존한 행복은 결국 불완전한 것이며, 행복이라기보다 거래에 가까울 것이다.), 모진 소리를 들으며 시댁에 얹혀사는 현정까지. 그들은 분명 집에 속해있으나, 그 집은 나를 채워주는 안식처는 아닐 것이다.
미소의 안식처 중 하나였던 남자친구 한솔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다. 처음에 그녀는 그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떠난다. 그의 안식처가 하나 없어진 셈이다. 하지만 한솔이 해외로 떠났다고 해서 미소의 행복이 사라지진 않는다. 타인에게 자신의 행복을 맡겨두었던 그녀의 친구들과 달리, 그녀는 집은 없을 지라도 나의 행복을 온전히 내가 책임진 채 삶을 살아나간다.
미소는 그녀가 만났던 그 누구보다 (물질적으로) 가진 게 없었다. 어떤 선택들로 인해 그녀가 그런 상황에 처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행복의 기준은 명료했으며, 그 기준은 오롯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아직 철이 들지 않은 거라고, 사람답게 살지 않는 거라며 비난할 수도 있겠다. 그럼 어떠한가. 그들의 기준에서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녀의 행복은 거기서 오는 것을. 하얗게 새어버린 미소의 머리색을 보며 이상하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굳이 약으로서 감추지 않아도 될 미소의 일부인 것을. 그녀는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 미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기꺼이 타인을 위해 자신의 온기를 내어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세상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