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안된다고 하지 말아주세요.
그동안 안녕하셨나요? 마지막 글이 작년 10월 25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회사에 UX/UI 기획 업무로 입사를 했다가, 난생 처음 10월 말에 마케팅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7개월이 지나있었습니다. 이제서야 한 숨 돌리며 일상을 다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빛이 들지 않던 서울의 좁은 방은 결국 계약 기간을 못채우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이사를 몇 일 앞두고는 '그냥 여기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사를 마치고 나선 역시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퇴근 시간은 조금 더 길어지긴 했습니다. 그래도 오히려 집이 가까울 땐 보지 못했던 책도 읽고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 둘씩 하고, 이렇게 글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초록의 비율과 코로 들어오는 공기의 신선함과 공간에 들어찬 사람의 수 정도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사이 저는 퇴사를 고민했습니다. 달력에 퇴사일도 적어두고, 동네방네 '나 회사 그만둘거야'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또 회사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팀원들과 가까워질 때면 '조금 더 다녀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왔다갔다 하는 마음 속에서, 이 마음이 사실은 이사를 가기 직전 방에서 느꼈던 감정과 닮은 감정은 아닐지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디자인이 하고 싶었습니다. 전공은 전혀 다른 교육학이었지만 대학교 생활 내내 어쩌다보니 디자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사가 된 이후로도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첫 퇴사를 하였고, 현재는 광고대행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취업 준비는 디자인으로 했었는데, 아쉽지만 이곳에서는 디자인을 하진 못합니다. 저는 디자이너가 아닌 기획자거든요. 퇴근 후 '디자인학교'라는 곳에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주 3회 2시간씩 수업을 듣고,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과제를 하다가 집에 가곤 합니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게 그렇게 아쉽습니다.
'디자인학교'는 1년 과정인데, 어느새 9개월을 다녔습니다. 야근이 많은 광고대행사의 특성 상 수업을 사수하기 위해 때로는 새벽에 일어나기도 하고 주말에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수업에 빠져야할 때면 어찌나 아쉽던지요. 수업 시간에 저는 종종 졸아서 친구들에게 그만 좀 자라고 구박을 듣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까지도 너무 좋아, 이게 저의 일상이 되길 바라기도 합니다.
지금 알아보고 있는 곳은 파주에 있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입니다. 올해 말 지원을 하고, 좋은 결과가 있다면 내년 2월, 퇴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이 또 마음은 갈팡질팡하겠지만요. 문득 디자인을 하려고 퇴사를 했던 첫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그 마음을 다시 품어야할 때가 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내년, 저는 첫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마음을 품게 될까요? 막차에 가까운 공항철도는 생각에 잠기기 좋습니다. 사실 지금 디자인학교의 졸업 전시의 주제가 책을 만드는 것이거든요. 언제 글을 쓸까 했었는데, 앞으로 이 시간에 꾸준히 한번 글을 써봐야겠습니다. 그렇게 나를 마주보다 보면, 답이 나올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