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 창작 시대, 나를 새긴다는 것

인공지능과의 공저(共著), 창작의 새로운 경계를 넘다

by 우리도 처음이라

누군가 물었다. “이건 네가 만든 거야?”

한참을 멈췄다. “응. “이라는 말은 나왔지만, 그 뒤는 흐려졌다.


정말 내 글일까


처음부터 그 문장은 내 안에 있었다. 단어는 맴돌았고 구조는 흐릿했지만, 무언가 말하려는 감각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ChatGPT가 내가 생각한 걸 대신 꺼내줬다. 가장 어려운 그 시작을.


나는 그 문장을 복사해 붙이고, 몇 단어를 고치고, 순서를 다시 맞췄다. 그러자 마치 오래전부터 내 것이었던 글처럼, 거기 있었다.


오픈 AI 공동 창립자 Andrej Karpathy는 말했다. Vibe로 받아들이는 시대, vibe coding의 시대가 왔다고.


나에게 글쓰기도 그랬다. 문장의 이음새를 모두 알지 못해도, 나는 느낌을 따라 고치고, 다듬고,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반쯤은 내가 쓴 것이고, 반쯤은 내가 쓰지 않은 것이었다.


CahtGPT로 글을 쓴다는 건, 내가 떠올린 것을 나보다 먼저 문장으로 옮겨주는 경험이었다.


생각은 내 것, 문장은 그의 것


던져진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내 생각이 더 뚜렷해졌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말하지 않으려 했는지.


이 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AI는 썼고, 나는 완성했다. 그런데 이건 정말 내 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작은 질문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더 큰 규모로, 더 복잡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도 AI를 활용한 영화의 수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개정했다. 2025년부터는 AI 기술을 사용한 영화도 오스카상 후보로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오스카뿐만 아니라, 인간과 AI가 함께 만든 작품들은 점점 더 많은 무대에 오르고 있다. 감독은 점점 ‘제작자’보다는 ‘연결자’로 불리고, 작품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AI가 만든 줄거리, AI가 편집한 장면, 그리고 그 위에 인간의 감정이 얹혔을 때—그건 누구의 작품일까.


이 질문은 법과 제도의 언어로도 답을 찾아가고 있다. WIPO와 EU는 ‘AI가 만든 창작물’의 권리를 누가 가질 것인지 논의했고, 미국 저작권청은 “사람의 창작성이 개입되지 않았다면 보호받을 수 없다”라고 명시했다.


나는 얼마나 개입했나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내가 만든 문장이 ChatGPT의 결과 안에 들어가고, 그 결과를 내가 다시 고치고, 그렇게 완성된 문장이 다시 나의 글이 되는 과정.


그건 누구의 문장인가.

그 글을 만든 건 누구인가.


창작의 주체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결과물은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이 함께 만들어졌는가’로 설명되는 쪽에 가까워진다.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인공지능과의 공저(共著). 공동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의 산물이다.


최근 딥마인드는 “Welcome to the Era of Experience”라는 논문을 통해 AI가 더 이상 인간 데이터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경험하고 배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휴먼 데이터의 한계를 넘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지식을 쌓아가는 존재로.


AI가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면, 그 소유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까. 창작의 정의는 변하고 있다.


손으로 쓴 것만이 아니라, 의도를 담은 개입이 창작이 되는 시대. 도구가 너무 똑똑해졌을 때, 우리는 여전히 창작자일 수 있을까. 저작권은 여전히 우리를 보호해 줄까. 그리고 그 경계는, 이제 법보다 기술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keyword
이전 02화속도는 넘치고, 감각은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