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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와 불필요의 경계에서

동료이자 경쟁자, AI와 나란히 걷는 일

by 우리도 처음이라

십 년째 코드를 다뤄왔다. 문제의 흐름을 읽고 구조를 세우며 버그를 추적하는 일, 그 자체가 내 일의 중심이었다. 익숙했고 손보다 감각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설명도 하기 전에 AI가 먼저 정답을 건넨다. 내가 잘하던 일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는 순간들. 익숙했던 능력이 서서히 분해되는 느낌이다.


필요와 불필요의 경계에 서 있다


쓸모라는 단어가 희미해질 때 마음속에서 무언가 조용히 빛을 잃는다. 나 없이도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서 내가 있었던 자리는 점점 흐릿해진다. 어디까지가 나였는지, 나여야만 했던 일이 있었는지 문득 멈춰 서게 된다.


그럼에도 기술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놀랍도록 매혹적이다. 말만 하면 코드가 생성되고 이미지를 그리면 영상이 따라온다. 문서를 던지면 요약과 통찰이 되돌아온다. Midjourney가 만든 이미지 위에 Kling이 움직임을 입히고 NotebookLM은 수십 페이지의 문서를 읽어 마치 오래 고민한 듯한 말투로 정리해 준다.

만들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


개발 환경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혼자서도 팀처럼 일할 수 있다. 내가 기획하고 AI가 디자인하고 함께 코드를 짠다. 도구였던 기술은 점점 파트너가 되어간다. Cursor나 Windsurf 같은 IDE는 더 이상 명령을 기다리지 않는다. 문맥을 읽고 구조를 제안하며 작업의 리듬을 함께 만들어간다. 요즘 필요한 건, 정확함이 아니라 감각인 것 같다.


"요즘 코딩은 Vibe를 잡는 일이다."
— Andrej Karpathy


그가 말한 ‘Vibe’는 단순한 감이 아니다. 코드에 흐르는 의도와 상황, 말로 설명되지 않는 결을 읽는 능력이다. 기계는 정확할 수 있지만 아직은 그 vibe를 ‘느낀다’고 말하진 못한다.


그래서 요즘 오히려 더 많이 보고 더 넓게 겪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문법보다 분위기, 정답보다 맥락. AI가 놓치기 쉬운 그 여백을 사람은 여전히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을 던지는 힘도 결국 어딘가 어긋난 흐름을 눈치채는 데서 온다.


공부하고 실패하고 경험하며 그 안에서 길러진 감각이, 지금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언젠가는 기계가 따라올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건드린다.


생각보다 가까운 이야기였다


얼마 전 카카오는 AI로 대체 가능한 일부 직무의 신규 채용을 중단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는 다가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빨랐고, 그 뉴스는 곧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더는 미뤄둘 수 없게 만들었다.


불안은 새롭지 않았다. 기술 앞에 선 마음은 오래전부터 비슷한 떨림을 품고 있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직물 공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을 기계를 부쉈다. 그들이 두려웠던 건 기술이 아니라 자신이 사라질까 봐였다. 러다이트 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 불안은 세기를 건너, 다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구글은 최근 전체 신규 코드의 30% 이상이 이미 AI의 손에서 쓰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앞으로 1년이면 대부분의 코드가 AI에 의해 쓰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계는 더는 보조자가 아니라 동료를 넘어 경쟁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 앞에서 우리는 다른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기계를 밀어내기보다 곁에 두고 배우며 나의 가능성을 확장하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렇게 함께 나아가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래서 묻게 된다. 나는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기술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결을 나는 어디까지 감지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저 그 틈을 감지하려 애쓰고 그 작은 어긋남 속에서 질문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대로 이 시간을 헤쳐 나간다.

당신은 지금 어디쯤에서 이 질문을 마주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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