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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하루, 시닝(西宁)의 끝

떠남을 앞둔 작은 쉼

by 우리도 처음이라

시닝(西宁, Xīníng)의 마지막 날은 특별한 계획 없이 보내기로 했다. 내일 아침 기차로 약 4시간을 이동해야 했기에 하루 정도는 천천히 흘려보내고 싶었다. 우리 여행의 방식은 늘 그렇다. 큰 틀의 동선과 이동만 정해두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간을 따라간다. 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순간의 분위기에 맞춰 조용히 머무는 방식이다.



중국 여행을 하며 생긴 작은 습관이 있다. 도시마다 이름이 새겨진 벽이나 간판 앞에서 사진을 남기는 일이다. 첫 여행지였던 리장(丽江, Lìjiāng)에서는 놓쳤지만, 그 이후로는 빠뜨린 적이 없다. 하나의 도시를 떠올릴 때, 그 이름이 적힌 배경이 자연스레 함께 떠오른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더 소중해진 루틴이었다. 시닝에서도 붉은 담장 위의 ‘西宁’ 두 글자가 또 하나의 기록이 되었다.



점심 무렵, 디디를 타고 유명한 카페가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건물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고, 쇼핑몰 내부에서는 한국식 식당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한글 간판과 익숙한 메뉴들이 적혀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념의 색, 재료의 구성이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한국 음식 자체라기보다 ‘한국 스타일’을 참고한 현지식에 가까워 보였다. 익숙함 속의 묘한 어색함이었다.



카페는 한적했고, 우리는 실내 대신 야외석을 택했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았고 바람도 느리게 불었다. 보리쌀 같은 알갱이가 들어간 커피는 비주얼은 흥미로웠지만 맛은 익숙하지 않았다. 중국 여행을 하면서 배운 점이 하나 있다면,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카페일수록 커피 맛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 그래도 잠깐 쉬어가기에는 충분했다. 옆자리 담배 연기가 조금 날아오긴 했지만 그 정도는 오늘의 분위기를 크게 해치지 않았다.



카페를 나와 숙소로 가는 길에 팔마차업(八马茶业)이 눈에 보여 잠시 들렀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기에 스마트폰 번역기를 켜 두고 점원과 필담을 나누며 차를 시음했다. 화면을 번갈아 보여주며 나누는 대화는 서툴지만 즐거웠다. 백차(白茶)의 은은한 단맛, 철관음(铁观音)의 향을 차분히 비교하며 선물용과 집에서 마실 차를 골랐다.



평소 차를 즐겨 마시기에 이런 차관 방문은 이제 우리의 중국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즐거움이 되었다. 팔마차업뿐 아니라, 지금까지 들렀던 다른 차관의 직원들도 늘 친절했다. 번거롭지 않아하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시음을 돕는 태도 덕분에, 언어의 장벽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돌아온 숙소 1층 슈퍼에서 서주 아이스바를 닮은 우유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들었다. 진한 우유의 고소한 맛이 오늘의 느긋한 리듬의 마무리로 딱이었다. 그렇게 도시 이름을 기록하고, 카페에서 잠시 쉬고, 차 향을 고르고,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한 시닝에서의 마지막 하루. 이제 내일이면 차카(茶卡, Chákǎ)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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