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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카(茶卡)행 침대열차, 네 시간의 기록

하늘의 거울을 향해가는 시간

by 우리도 처음이라
차카로 향하는 기차
천공의 거울호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닝(西宁, Xīníng) 역은 이미 하루를 오래 살아온 사람들처럼 활기가 가득했다. 짐바퀴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 서로 길을 비켜주며 흘러가는 사람들, 안내 방송이 한데 섞여 출발을 재촉했다. 그 소란 속에서 전광판의 차카(茶卡, Chákǎ)행 안내가 보이자 아직 보지 못한 풍경으로 향한다는 설렘이었다.



유튜브에서 찾아봤던 침대열차 후기들은 좁고 불편하고, 사람도 많아 잠깐의 휴식조차 어렵다는 이야기로 가득했지만 새로운 여행지로 가는 설렘이 더 컸다.


승강장에는 짙은 녹색 차체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아침빛이 닿을 때마다 녹색은 부드럽게 번지고, 금색 라인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어놓은 듯 단정하게 이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이 열차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었다. ‘天空之镜号(티앤쿵즈징하오, Tiānkōng zhī jìng hào)’, 직역하면 하늘을 비추는 거울. ‘天空’은 하늘, ‘之镜’은 그것을 비추는 거울을 뜻한다. 차카염호가 지닌 별칭을 그대로 품은 이름이라, 마치 목적지의 이미지를 먼저 보여주는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기차 앞에는 승무원들이 단정한 복장으로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은 열차가 오래된 구조임에도 낡아 보이지 않고 감성적으로 다가오게 해 주었다.



객차 안으로 들어서자 3단 구조의 침대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우리의 자리는 가운데인 2층이었다. 3층은 천장과 너무 가까워 몸을 일으키기조차 어렵고 형광등이 바로 앞에 있어 장시간 머물기엔 부담스러워 보였다. 1층은 테이블도 있어 가장 여유로워 보였다.



침대칸 옆에는 작은 캐리어를 올릴 수 있는 선반이 있어 짐을 정리하기에도 충분했다. 우리는 트립닷컴 앱으로 예매해 자동 배정되었지만, 중국 철도 앱에서는 자리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느린 풍경의 속도


열차가 움직이자 창밖의 풍경은 조금씩 다른 표정을 드러냈다. 낮은 건물들이 뒤로 멀어지고 들판이 넓게 이어지며, 햇빛은 고원의 흙빛과 초원을 번갈아 부드럽게 비추었다. 기차의 흔들림과 금속 난간의 미세한 떨림이 어느 순간 배경음처럼 익숙해졌다.


바로 옆칸에 있던 식당칸은 정적 속에서 보라색 테이블보와 파란 커튼만이 은은하게 움직였다. 먼 길을 잇는 사이 잠시 들르는 작은 쉼표 같았다.



11시부터 식사가 가능하다고 해서 기다렸다가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우리는 감자볶음과 마파두부를 주문했다. 쌀밥은 급식에서 받던 찐 밥 같은 질감이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음식은 의외로 조화로웠고, 향이 강한 중국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아내도 부담 없이 먹을 만큼 순했다.



식사를 이어가는 동안 창밖에서는 초원이 길게 펼쳐지고 있었고, 열차는 고원의 안쪽으로 천천히 파고들고 있었다.


여정을 이어가며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청해·감숙 지역은 대부분 차량으로 이동하는 패키지여행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많은 여행자가 그 방식을 택한다는 걸 알고 나니, 우리가 탔던 침대열차에 사람이 거의 없었던 이유가 자연스럽게 짐작되었다. 유튜브에서 본 붐비는 후기와 달리, 우리의 열차는 오히려 고요함을 선물하고 있었다.


천천히 목적지로 다가가는 중

초원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게 이어졌다. 반복되는 선과 색이 지루하기보다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히는 느낌을 주었다. 바람이 스치는 속도와 열차의 흔들림이 하나의 리듬처럼 이어졌고, 그 느림은 여정의 밀도를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4시간을 조금 넘는 이동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다가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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