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북한산장 옆에 현대산장

상냥한 마녀 동맹의 계곡 나들이

by 시코밀


나이 먹어 시간이 빠른 건가, 시간이 빨리 흘러 나이를 먹는 것인가


작년 11월에 우리 상냥한 마녀들과의 단합대회를 끝으로 우리는 영 나들이 다운 나들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22년이 한 살을 더 먹는 동안 우리들도 소리 소문 없이 한 살 씩을 더 먹었다. 아이들은 커가는데 우리는 어째 자꾸 늙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인지. 한 살만큼 더 늙어가는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안될 거, 힘들 거 알면서 시작한 회사에서 중간 간부 심사에서 떨어졌고 사업소 근무지도 이동을 했고 아이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었고 아이 학교 때문에 잠실에서 구리 쪽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 멤버 중 J언니(서열상 셋째)도 근무지를 이동했다. 뭐 그래도 다 서울이긴 하다. 나와 J언니는 사무실에서 집이 좀 더 멀어졌을 뿐이다.


여하튼 우리는 새해를 맞아 좀 더 바빠졌었다. 나 역시 근무지이동으로 업무가 바뀌어서 신규업무를 습득하느라고 바빴고 아이는 갑자기 고등학생이 되어서 새 학기라 학교도 자주 방문했었다. J언니는 고3 수험생 엄마가 되어서 내색은 안 해도 매일 늦은 밤 학원까지 아이 픽업을 다니느라고 몸과 마음이 제일 분주하다.


가끔 우리끼리 저녁 한두 번 먹을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나들이다운 나들이를 나오지는 못했었다. 벌써 8월이라니. 시간이 진심 유수와 같구나. 나이 먹으면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더니 정말 그렇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아니면 무엇이 그리 늘 피곤한지 그것도 아니면 바빠서 늘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우리는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한 틈을 타 8월 첫 주 금요일에 겨우 시간을 내었다.


평일 회사를 재끼고 계곡, 어디까지 가봤니?


계곡 나들이를 일주일 남겨두면 우리는 마음이 들뜨고 회사에서 업무가 많아지거나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진상짓을 해도 제법 참을 만 해진다. 수건이랑 여벌 옷을 챙기라는 둥, 선크림이랑 선글라스 필수라는 둥 단체톡방이 설렘으로 가득해진다. J언니는 요즘 핫하다는 계곡패션을 캡처해서 참고하라고 톡방으로 보내왔다. 하나 같이 시원하게 파인 나시 아니면 홀터넥 상의나 쇼트팬츠 스타일이다. 왕언니가 J언니더러 너네 딸 옷 4벌 가져오라고 해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당일 날 아침, 남들도 다 가는 계곡인데 괜히 나 혼자 이런 호사를 누리나 싶어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속으로 어깨가 으쓱한다. 가끔 생각해 본다. 우리들의 움찔할 정도로 흥분되고 설레고 재미난 나들이는 어쩌면 바쁜 일상 속 겨우 겨우 시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말이다. 남편은 회사의 핵심인재 4명이 다 함께 자리를 비우면 어떡하냐고 걱정을 해서 내가 왕언니 버전으로 답을 해줬다. "지랄~~."


그래서 우린 평일에 다 같이 휴가를 내고 구파발역에서 오전 10시 반에 모이기로 했다. 늘 행선지는 언니들이 고르기에 북한산 어디라고만 생각했지 정확한 행선지는 몰랐다. 대중교통을 무척이나 불편해하는 J언니가 차를 끌고 와준 덕분에 S언니(하남언니, 나이 서열상 둘째)를 기다리는 동안 차를 정차시킬 데가 없어 우린 J언니 차를 타고 구파발 역 근처를 잠시 투어를 했다.


새삼 구파발역 주변이 신도시처럼 깨끗하고 마을도 너무 예쁘게 보였다. 뒤로는 푸르른 북한산이 자리하고 있어 마음이 어쩐지 탁 트이는 동네였다. 우리들은 입을 모아 이 동네 너무 깨끗하고 좋다면서 다 같이 이사를 오는 게 어떠냐고 한바탕 너스레를 떨었다. 아, 우리는 모이는 순간부터 무슨 얘기를 해도 웃느라고 입이 아프다. 이런 날은 오래간만에 말도 많이 하고 웃었더니 턱근육이 아프게 된다.


북한산장 옆에 현대산장


우리가 도착한 곳은 북한산장 옆에 현대산장이라는 음식점이었다. 산장이라니.. 이름이 너무 엔틱 하질 않나. 우리 집도 예전에 식당을 했었는데 '병풍산장'(병풍산 앞이라서)이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식당은 계곡 바로 옆에 위치를 해서 눈이 시원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능이버섯 오리백숙이었나 보다. 닭으로 할 것인지 오리로 할 건지 잠시 의견이 분분했으나 오리로 당첨!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음식을 주문을 해놓고 눈길을 돌리니 많은 사람들이 계곡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세상에, 역시 나만 안 돌아다니는 게 분명해하고 분한 마음도 잠시 수건을 하나둘 챙겨 들고 음식 나오기 전에 발이라도 담그고 오자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물이 얼음물처럼 시원해서 더위가 싹 가시는 듯하다. 자꾸 사진을 찍어대는 내게 언니들이 자꾸 뭐라고 한다.


계곡물에 얼마 담그지도 못했는데 식당주인에 음식 다 되었다고 부른다.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는 그동안 밀렸던 얘기들을 하는데 음식이 양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수다를 떨어도 배가 고파지지 않았다. 맥주 한두 잔에 우리 넷 목소리가 커지자 주인이 자꾸 눈치를 줬다. 그나마 식당에 사람도 많지 않았고 적당히 넓어서 그것 또한 다행이었다. 언니들 목소리 좀 줄여봐.


서로가 있어 든든한 우리


S언니가 회사에 있었던 참기 힘든 업무갑질들에 대한 일에 대해 얘기했는데 누가 블라인드에 안 올리나 하는 거다. 맥주 두 잔에 취한 나는 내가 대신 올려줄게 하고선 그 자리에서 블라인드에 글을 올렸다. 계곡에 나와서 블라인드라니. 공감하는 회사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금방 댓글들이 달린다. 스스로 업무에 대한 책임감도 남다른 S언니의 바람처럼 안 좋은 제도나 관행은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여론이 형성되어야 조금은 좋은 쪽으로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잠시 가져봤다.


J언니는 새로 옮겨간 사무실 사옥 내 스포츠 센터에서 헬스를 하고 씻으러 갔는데 탈의실에서 어느 할머니 하고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서 친구들끼리 만나서 대회를 해도 서로 잘 안 들린다고 하였단다. 분명히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다른 할머니는 귀가 잘 안 들려서 다른 사람에게 같은 얘기도 다르게 전달을 하더란다. 언니들이 '아니 잘 들려도 서로 다른 말하고 전달이 안되는데 나이 먹어 귀까지 잘 안 들리면 어떡하냐'라고 난리다. 이제 우리도 나이 들면 3인 이상 같이 다녀야 하는 거 아니냐. 증인이 항상 필요하다면서 한바탕 웃었다. 높아진 웃음소리에 주인아저씨의 눈총이 뒷목에서 잠시 느껴진다.


S언니는 나이가 들어서 잘 안 들리게 되더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나중에 우리 서로 잘 안들리더라고 이해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자세히 얘기해 주자고 도원결의 아닌 북한산 계곡결의를 하였다. 이런 다정하고 멋진 약속이 다 있나. 웃고 있는 언니들 얼굴을 보니 새삼 든든하다. 나의 상냥한 마녀들은 가끔 드세다. 외부침략? 에 맞서는 드센 마녀들은 서로의 편이 되어준다. 말만 드세지 세상 마음 약한 마녀들이다. 그래서 상냥하고 다정하다. 고로 내겐 상냥한 마녀들이다. 어려운 일 앞에서 서로 위로하고 힘든 일 앞에서 잘 견뎌보자 격려를 하는 사이다.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는 마녀봉이 없어서 그렇지 어려운 일 앞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는 마녀들의 존재는 어느덧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되곤 한다.


어김없이 우리는 근처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에 들러 빵도 먹고 팥빙수에 남은 얘기들을 하고 아침에 만났던 구파발 역에서 헤어졌다. 수험생 엄마로서 제일 바쁜 J언니가 다음에 박을(1박 2일로 가는 여행) 하자면서 강원도 고성이라도 한번 가자고 한다. 벌써 다음 여행지가 정해지는 건가. 헤어지는 아쉬움은 늘 이렇게 새로운 설렘을 준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특별한 일이 없이 단조로워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매일이 평범하고 그 매일이 모여 일주일이 되면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 없이 일주일이 지나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간은 오는 게 아니고 가는 거라고 하질 않았나. 나를 그저 스쳐가는 시간을 붙잡는 방법은 매일은 아니라도 자주 특별한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가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기억하고 공유할만한 추억을 만드는 것이 아닐는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다들 나름 본인의 여러 역할들을 해내느라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와중에 조금 더 특별하고 행복한 일들을 자주 만들어내자. 물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자잘하게 행복한 일이 많아 자주 웃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남은 우리의 인생시간도 잘 써보자는 다짐을 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기억이 많은 사람이다. 그럼 필요한 건 모다? 그건 나를 아껴주는 좋은 사람들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삶에서 걸어 나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