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대학원 1학 차에서는 상담이론, 이상심리, 발달이론, 그리고 심리검사에 대한 과목을 배웠습니다. 저의 매거진 연재를 통해 나만의 심리상담이론 해석과 대학원 적응기를 쓰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절친했던 분에게 직면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누구에게도 터놓기 힘든 마음을 어렵게 털어놓았는데 내심 무조건적인 인정과 지지를 바랐던 모양이다. 아니면 상대방과 내가 친밀한 사이인 만큼 내게는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지지를 보내줘야 한다는, 그래야 마땅하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의 솔직한 심정은 우리에게 때로는 충고가 되고, 때로는 조언이 되며, 때로는 비난이 된다. 상대방의 진정한 의도를 가늠하기도 전에 우리는 가끔 마음을 다치기도 하고 나의 생각을 가다듬을 사이도 없이 서운하고 속상한 감정은 나를 감싸고 결국 표현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상대방이 내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별거 아닐 수도 있고 그냥 지날 수도 있는 말들인데 상대방이 내게 중요한 사람이면 상해진 감정으로 다시 상대를 만나기는 어려우니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우리의 관계가 이만한 일로 어그러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는지(물론 그것은 사실이지만) 아니면, 이 정도 직면쯤이야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신뢰로운 관계를 믿었는지 아니면, 나의 못난 모습에서 상대방은 자신의 모습을 언뜻 발견하고 역전이를 한 것인지는 아직은 나도 모르겠다. 아니면 못난 내 모습에 스스로 찔려서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준 상대방에게 되려 욱 했는지, 아니면 당신 만큼은 나를 이해해 주고 인정해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 반대의 결과를 들어서 실망감이 들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충고나 조언을 나를 향한 비난으로 비꼬아 들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상대방의 말처럼 형편없는 나 자신과 조우하는 것이 겁이 나서 그만 질 것 같으니 화투판을 엎어버린 사람처럼 상대방에게 어깃장을 놓은 것인지, 며칠 사이에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아마 마지막이 제일 확실하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감정이 바람직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감추기가 영 힘이 든다. 감정은 해소되어야만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의 의도가 비난이든, 아니면 내가 꼬여 들었든 이 와중에 상담 장면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내담자라면, 내가 상담자라면 어떤 태도를 지니는 것이 바람직할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간중심 상담이론은 칼 로저스에 의해 발전된 인본주의 심리치료로 그는 상담 시에 치료의 핵심조건으로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진실성(혹은 일치성),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그리고 공감적 이해가 그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성장과 자기 치유를 위한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들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심리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상담자의 목표가 된다. 그중 나의 경험으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음이 심하게 다쳐본 사람은 타인에게 마음을 열기 어렵다. 어떠한 조건 안에서만 인정받아온 사람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타인의 눈치를 볼 것이다. 아이는 어린 시절 부모의 애정을 먹고 자란다. 아이는 자아개념이 발달하면서 긍정적인 자기 존중감을 받기를 원하는데,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상황과 조건에서만 인정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더 많은 인정과 존중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표현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신에게 중요한 타인의 기대와 의도대로 움직일 확률이 클 것이다. 자신의 긍정적인 자아존중감 형성을 위해서 타인의 가치를 받아들이면서 살아온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소망과의 괴리를 느끼게 되고 이는 심각한 심리적 불균형을 가져오게 된다. 한마디로 하고 싶은 말 못 하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자꾸만 어른들 눈치만 보고, 자신의 감정은 그대로 억압만 하게 된다면 병이 나게 되어 있다.
인간중심상담에서 심리적 부적응이란, 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험의 자각을 부정당하거나 왜곡할 때 생겨난다고 본다. 이러한 방어적인 태도는 타인으로부터 조건적 존중을 받으면서 인식된 가치의 조건을 내면화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이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하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닌, 자신의 경험과 인식이 온전히 인정받고 수용되고 있다는 지각이 필수가 아닐까 싶다. 로저스는 그러기 위해서는 상담현장에서 내담자를 향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은 단순히 내담자를 칭찬하기 위해서 무조건 칭찬을 하거나 내담자 편을 들어주거나 친밀감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내담자의 생각, 감정, 행동에 대해 어떤 판단이나 평가도 내리지 않는 치료자의 순수한 보살핌을 의미한다. 이것은 수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담자가 괴로움, 적개심. 부적절한 감정, 방어적 태도를 보일 때도 긍정적이고 성숙한 감정을 표현할 때처럼 똑같이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료자는 내담자를 비판단적이고 비평가적으로 대해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 중에서)
상처 입고 아픔으로 괴로우며, 두려움에 방어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사람은 또 자신의 감정이 부정당하거나 자신의 경험이 부인될까 봐 무엇이든 말하기가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상담현장에서 내담자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비로소 상담은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은 내담자와의 관계를 더 신뢰롭게 하고 내담자는 자신의 감정과 그 상황에 대해 더 깊이 탐색하고 스스로도 자신의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판단되고 평가되는 느낌은 싫을 것이다. 설사 내가 잘못한 것이 맞다 해도 말이다. 비난은 부처님도 돌아서게 만든다고 하질 않나. 다만 그 싫은 소리를 이겨내고 나은 성장으로 나아갈지 말지는 여전히 각자의 몫이다.
인간은 누구나 나약하고 그리하여 반성하는 존재이며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성장은 아프다. 자신의 현재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기로 다짐하고 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좀 멋지게 봐도 되지 않을까.
인간중심 상담이론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법이라기보다는 치료자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에 더 초점이 있다. 그런 척하지 말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라는 수업 중 교수님의 말씀이 예비 상담사로서 내게 참으로 묵직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