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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코밀 Oct 18. 2024

페어베언에게 배우다

인간은 관계를 원한다

상담대학원 후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3학차에 들어서서 대상관계이론을 배우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쓰고 있어요.  




관계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     


페어베언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를 위한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고, 사람은 본질적으로 타인과 관계하는 존재이고 그리하여 분석대상은  독립된 ‘자기(self)’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타자와 관계 속에 있는 자기’로 보았다. 자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원래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경험의 전제조건으로 보았고 이후 모든 경험들의 출발점이며 이후 경험들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자기는 항상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에 관계의 관점에서 정의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사람이란 ‘나’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중요한 목표를 가진 ‘리비도적인(애정 어린 관계를 추구하는)나’라고 보았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를 근본적으로 동기화시키며 신체적인 만족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다고 페어베언은 주장했다. 페어베언은 유아와 어머니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특히 구체적인 외부현실 속에서 어머니(혹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심리적 자기 형성에 중요하다고 하였다. 페어베언은 실제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상호작용을 더 중요하게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자아와 대상     


페어베언의 말하는 자기(self) 구조의 중심에는‘중심적 자아’(central ego)가 있다. 중심적 자아를 중심으로 한편에 리비도적 자아는 외부 대상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기(self) 구조 내에 ‘흥분시키는 내적 대상’(exciting object)을 형성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 중심 자아에서는 리비도적 자아와 대조되는 반리비도적 자아도 형성된다. 반리비도적 자아는 늘 거절하는 외부 대상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기 구조안에 ‘거절하는 대상’(rejecting object)을 형성한다.      


개인이 살아가면서 새로운 상대방을 만날 때에, 상호작용의 질에 따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유아는 자기(self)의 구조안에서 이미 형성된, 흥분시키는 대상이나 거절하는 대상이 덧 입혀져서 좋아하는 대상인지 거부하고 싫어하는 대상인지 구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외부 대상과 주고받은 영향은 다시 그 개인의 자기 구조안의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절하는 대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영향은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에게 영향을 주고, 다시 중심적 자아의 성장에 영향을 주게 된다.  

    

내적 심리구조(자아의 분열)     


자아와 대상은 생애 초기에 고유한 자아와 고유한 대상으로 서로 리비도적인 연결을 하고 있다. 이때는 유아는 안정감과 신뢰 등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아기는 출생 직후의 외상과 스트레스를 경험하면서 이러한 일차적 통합이 깨지는 것을 경험하는데 이로 인해 내적으로 분리되고 되는 데 이를 일차적 분리라고 하고 분열성 양태라고 불렀다. 페어베언 관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분열성 양태를 거친다. 생에 초기 아주 잠깐 리비도적인 연결로 만족하고 완전한 상태였으나 엄마가 항상 모든 것을 만족시켜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분리와 갈등을 경험하며 내적분리와 갈등을 통해 스스로 자아를 형성해 나간다고 볼 수 있다.      


내적 단절을 일으키는 일차적 외상은 대상과의 완전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유아는 관계욕구를 가지고 태어남에도 불구하고 외적인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관계에서 철수하고자 하는 것은 근본적인 갈등을 야기한다. 페어베언에 따르면 근본적인 욕구에 벗어나면서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오는데 하나는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다른 하나는 나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가 그것이다. 이러한 일차적 외상은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관계의 실패 경험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그리고 나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의 좌절감이란 인간이라면 누구가 겪은 상실의 아픔이 아닐까 싶다.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의 있는 그대로 무한한 사랑을 받고 가치 있다고 온전히, 완벽히 그리고 확실하게 느낄 수는 없다. 유아의 입장에서 초기의 이런 유기는 지독하게 견디기 힘든 것이다.      


유아는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와 자신이 충족하지 못한 관계에서 오는 정서적 결과(불안. 좌절 등)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을 찾는다. 유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외상의 경험을 분리시켜 내부에 이를 재배치한다. 유아는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정신적 외상을 내면으로 가지고 와서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유아가 외상의 경험을 내부에 두는 이유는 더 통제가 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유아는 관계욕구로 인해 외부 대상과 관계를 계속해서 맺을 수 있지만 분리된 나쁜 경험은 관계의 위험으로부터 유아를 철수하게 만든다.(관계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함)     


엄마가 유아에게 만족스러움을 주고 유아가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게 되면 유아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서 만족스러운 상태에 있게 되고 이때 자아는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게 되고 중심자아화된다, 중심자아가 대상과 리비도적인(애정 어린) 관계가 되었다가도 그 관계가 깨졌을 때(엄마와의 상호작용이 바람직하지 않을 때) 양면성을 띠는 관계를 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바로 견딜 수 있는 부분과 견딜 수 없는 부분이다.      


견딜 수 있는 부분이라 함은, 분노나 욕구가 지니 치지 않아 비교적 부드러운 관계, 중심자아는 이상적 대상과의 나쁜 경험도 무난한 게 이겨낼 수 있는 통제 가능한 내면상태를 말한다. 견딜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흥분시키는 대상과 리비도적 자아의 내적 결합이고, 다른 하나는 거부적 대상과 반리비도적 자아의 내적 결합이다.     


유아가 필요한 것들에 대해 엄마가 완벽하게 반응해 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엄마를 나쁜 대상으로 경험하는 환경이 발생할 것이다. 유아가 경험하는 나쁜 대상은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절하는 대상이다. 흥분시키는 대상은 뭘 해줄 것처럼 해서 의존하게 만들다가 결국 좌절시키는 어머니, 날 애타게 하는 어머니, 처음에는 희망과 기대를 주다가 후에는 결국 거절하는 어머니를 이야기한다. 매번 아이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다가 어쩌다 한 번씩 아이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엄마들을 우리는 여러 매체를 통해서 본다. 또한 거절하는 대상은 만족을 주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 어머니, 나를 거부하는 어머니, 적대적이거나 철수되어 있는 어머니로 대부분 거절로 아이들 대하는 관계를 말할 수 있겠다. 많은 경우 한 어머니는 거절하는 측면과 흥분시키는 상반된 측면을 가지고 있고 흥분시키는 대상은 거절하는 대상의 야누스 얼굴 같은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리비도적 자아, 반리비디도적 자아로 내면화한 후에는 내재화된, 견디기 어려운 나쁜 대상을 처리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이 뒤따르는데 가장 간단한 방법이 억압인 것이다. 억압되는 것은 불쾌한 기억이나 욕동, 죄책감이 아니라 나쁜 대상 그리고 나쁜 대상과 관계를 맺고 있는 분리된 자아구조도 억압된다.    

  

도덕적 방어


유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엄마를 외면할 수 없다. 나약한 유아는 생존에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므로 유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갈등을 처리하고자 한다. 엄마와 불만족스러운 관계경험 시에 유아는 나쁜 대상을 외부에 놓지 않고 내적 대상으로 만들어 통제하려고 한다. 나쁜 것을 경험함으로써 겪는 부정적 감정을 내면화함으로써 내게 필요한 외부 사람을 좋게 보고, 그들을 믿으며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외적은 안정감은 결국 내적 불안과 갈등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 이를 도덕적 방어라고 부른다. 도덕적 방어는 죄책감에 대한 방어로 죄책감은 사랑받지 못한 수치심에 대한 방어이다. 대상에게서 좋은 측면, 즉 흥분시키기나 거부하는 대상이 분리된 후 남게 되는 이상적인 대상을 내면화하는 중심자아가 수행하는 기능으로 유아는 나쁜 대상을 내면화를 통해 나쁜 것을 자기에게 부과하고 나쁜 대상의 실상을 직면하지 않는 것이다. 유아가 억압을 통해서 자아가 분열되는 상황까지 가면서도 내적 대상을 만드는 이유는 부모의 선함을 유지하려는 환상 속에서 어머니의 좋은 요소와 나쁜 요소로 나누어서 구분하고 분열시킴으로써 어머니로부터 위협받는 감정 없이 의존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현실에선 결핍되었지만 내적 대상들에게 느끼는 강렬한 애착을 통해 안전감과 지속성을 보상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페어베언에게 있어선 아이에게는 대상이 완전히 없는 것보다 차라리 나쁜 대상이어도 있는 것을 원하는데 아이는 자신과 함께 하는 대상의 표상을 내면화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렇게 받아들인 대상들은 트로이의 목마처럼 자아의 내부에 자리를 잡게 되고 이러한 분열이 자주 일어날수록 중심 자아는 작아진다. 중심 자아가 비는 상태가 될 정도로 분열되느냐, 중심자아가 리비도적 자아나 반 리비도적 자아를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는 갖고 있느냐가 개인이 정신병리냐 아니냐를 결정한다고 보고 있다. 현실에서는 리비도적 자아와 반 리비도적 자아라는 심리 내적인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인데, 중심 자아가 리비도적 자아나 반 리비도적 자아를 통제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돼서 위협적인 자극들을 잘 처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건강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 내면화된 초기 대상관계에 따라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현실세계의 타인들과 과거의 고통스러운 관계 유형을 반복하는 것이 정신병리라 할 수 있다.      


분열이란 원시적인 방어의 형태로 유아가 경험하는 정상적인 방어기제이다. 하지만 유아가 경험하는 좌절경험이 만성적이고 과도할 때,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불안이 지속될 때는 자아의 통합기능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대상이나 자기의 특성들이 서로 통합되지 못하고 분열된 상태가 되며 분열되어 내면화된 대상이 성인기까지 남아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이나 타인이 모두 좋게 느껴지거나 혹은 어느 순간에는 자신과 타인이 모두 나쁘게 느껴지는 병리직인 증상이 생겨날 수 있다. 부모와의 적절한 상호작용이 유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하게 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페어베언의 이론적 관점은 인간은 관계에 대한 기본욕구를 지닌 채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데 부정적인 관계 경험에서 오는 분노 감정을 내면에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겪는 내적인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하는 대상에 대해 의존하면서도 그러한 자신을 경멸하는 자신을 미워하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결국 상대방을 미워하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경멸로 변화시키는 정서적 처리 과정 말이다. 인간은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데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을 그 상황에 맞게 바꿔버린다고 한다. 도덕적 방어의 스펙트럼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몰라도 나의 경우를 비롯한 많은 경우에 도덕적 방어는 그러한 인간의 경향성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아이는 매 순간 부모를 용서한다는 말이 있다. 난 이 말이 꼭 도덕적 방어를 이야기하는 말처럼 들린다. 부모라면 정말로 아이를 잘 키워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매 순간 용서받아야 할 존재는 아니니 말이다. 대부분은 노력하는 부모들이겠지만 아직도 흥분시키며 거절하는 많은 대상들이 있다. 늘 거절하면서 어쩌다 한 번씩 호의를 베풀면서 아이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상황에 놓이게 한다. 이러한 유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분열시키고 부모는 여전히 좋은 대상으로 놓고 자신을 나쁘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아이의  자아감에 심각한 손상을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다. 오늘도 페어베언의 이론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참고문헌

1. 대상관계 이론 입문, Lavinia Gomez 저, 김창대 외 역, 학지사
2.대상관계 치료, Sheldon Cashdan 저, 이영희 외 역.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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