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대학원에서 배운 것들
교수님께서 작년 종강 총회 때 하셨던 말씀, ‘남의 꼴(것) 보지 말고 내 꼴(것) 보라. 자기 분석 열심히 하라.’고 하셨었다. 대체 무슨 자기 분석을 하라는 것인지 처음엔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학기 매주 주별과제를 부여받으면서 다짐을 했다. 이번 학기 최대한 나를 들여다보자.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주어질지 모르니 최대한 나를 들여다보자.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서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진정 어불성설이다. 하여 최대한 나에 대해 솔직하게 생각해 보고 쓰고자 노력했다. 매번 과제를 할 때마다 피시 앞에서 울면서 과제를 하는 내게 남편은 힘들면 휴학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곤 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감기에 한 달째 걸려서 아픈 몸으로 회사며 학교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나 보다. 11월 내내 감기에 걸려서 나는 가을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3학 차를 지났다. 이리저리 몸부림을 쳐가며 시작하였던 나의 3학기가 이제 막 막을 내렸다.
페어베언 이론을 공부하고 자기 발견 기술을 쓸 때는 정말 많이 울었는데 수업시간에도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와중에도 내가 쓴 내용들이 기억나고 감정들이 올라와서 눈물을 삼키느라고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학기에 나는 가족들과 싸우게 되거나 혹은 사람들과 심리적인 불편감이 생겨도 어쩐지 그런 마음의 수고로움들이 감사하게 생각되었다. 또 한 가지를 알게 되겠구나. 이 일로 나는 나에 대해 한 가지 더 배우고 내담자의 마음도 한 가지 더 알고 적용해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되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말이다.
과제를 해오면서 느낀 것은 나는 늘 내 작은 고통 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에 대한 느낌은 상대적이라고 하지만 내가 겪은 어린 시절은 무수히 작은 파편들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나는 그것들이 늘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남들도 다 겪는, 아니 남들은 나보다 더한 경험과 고통도 다 겪어내며 참아내며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는데 왜 너만 힘들다고 생각하냐고 자신을 많이 다그치면서 살아왔다. 나는 힘든 시기를 지날 때마다 나의 힘듦을 받아 줄 사람이 없었다. 힘들다고 표현해도 묵살당하거나 왜 너만 유난이냐고 엄마가 핀잔을 주셨던 기억은 아, 이 정도는 별거 아닌데 내가 엄살을 부리는 거야. 그냥 표현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였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와 동생들은 알아서 눈치껏 살아온 것 같다. 어려운 환경에, 무서운 아빠덕에 늘 눈치를 보면서 그것이 어느덧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여기게 되고 어느 것이 진정 자연스럽고 부자연스러운지도 헛갈리게 되는 삶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많이 억압하고 통제하면서 살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생계로 자신들 몸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우리 자식들을 잘 먹이고 학교와 학원에 잘 보내는 것만으로도 책임을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조차도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의존할 생각을 많이 하지 못하고 남자 친구(현재의 남편이 된)가 생긴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내 삶의 크고 작은 일은 그와 의논하고 결정했던 것 같다. 나는 살려고 남들도 다 나만큼은, 아니 나보다는 몇 배는 더 힘들다고, 이 정도면 나는 복에 겨운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짐들을 이겨냈었던 것 같다. 더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계시니 말이다.
이런 나의 시각은 자식을 비롯해서 타인을 공감하는 데도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남들도 힘든데 왜 너만 힘들다고 그러냐고 아이를 공감하는 데 실패할 때도 있었다. 나의 판단으로 타인의 고통을 판단하고 있었다. 마치 힘든 시절을 겪어온 나의 아버지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우리 때는 그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신의 고통의 경중으로 타인의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이토록 무섭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가끔은 내 아이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데 참 어려움을 느낀다. 대체 왜 힘들까. 다른 이들도 다 이만큼은 하는데. 조금만 좀 견디지. 정작 나는 잘 견디지 못하면서 말이다.
친한 동기가 앞으론 자신이 그게(나의 아픔들) 별거라고 생각해 주겠다고 했을 때도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마음 편하게 마음이 아파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살아온 방식이며 두려움과 불안에 맞선 나의 방어기제였으며 나의 전략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 나는 내면의 어렸던 짠한 나를 바라볼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언젠가는 어린 내게 괜찮다고 말해 줄 날이 올 것이다. 이토록 내게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여전히 나는 성장하고 있고 성장하는 만큼 한 가지가 더 보이고 하나의 사건도 새롭게 인식이 될 때가 많다.
대학원에서 배움에 대해 깊이가 더해 갈수록 나를 더욱 탐색할 힘이 생기고 나아가 내담자도 그 힘으로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나를 잘 연마된 도구로 만들어서 보다 정확한 공감을 하는 데 사용하면 좋겠다. 많은 상담 이론들이 각기 다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아닐지 모르겠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훌륭한 치료적 관계 형성은 내담자에게 경험하지 못했던 공감적 관계 경험을 하게 한다. 내담자가 상담장면에서 상담사와 맺은 관계를 토대로 적절한 변형적 내면화를 일으키고 혹은 자신 안의 공격성을 담아주는 상담사로 인하여 좀 더 견딜만한 수준으로 만들어주는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어려운 장면에서 내담자의 공격성을 받아내며 담아줄 수 있는 마음이 큰 상담사가 되도록 쉼 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언젠가 가능하다면 말이다.)
10년 전 상담심리 학부를 사이버대학에 편입하여 수료하였을 때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 내가 과연 누군가의 고충을 들어줄 만큼의 그릇인가. 내 앞에 일들도 산더미 같은데 누군가의 삶의 고뇌를 들어줄 만한 마음의 공간이 있는가 하고 겁이 나서 그만 공부를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때는 육아에 직장에 모든 것이 버거울 때였다. 이제 와서 상담사를 하려고 공부를 시작하니 갈수록 시력은 나빠지고 체력은 힘들고 더구나 나는 그 긴 세월 동안 상담사를 해보자 하는 마음은 자랐지만 나이 역시 그만큼 먹어버렸다. 한참이나 어린 동기들을 보면서 이제 와서 내가 저들처럼 잘할 수 있을까. 어린 동기들 인생 앞에 내게 없는 10년 이상이 펼쳐진 것을 생각하면 불안함에 한숨이 나온다. 지금 해도 되는 걸까. 더 깊이 뛰어들어도 늦지는 않는 것일까. 내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 허름하고 나약한 몸뚱이를 가지고. 그럼에도 이미 나는 시작했고 돌이킬 수 없고, 이미 학문의 깊이를 알아버렸다. 늦게 시작한 만큼 오래 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나는 더 앞으로 상담이란 배를 움직이려고 한다. 누가 그랬지. 배에 오른 이상 내리지만 않으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