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운대학교 상담복지정책대학원 '상담심리치료학과' 수학 후기
대학원에 입학하고서 브런치에 '직장맘의 상담대학원 적응기'를 연재하기 시작하였는데 3학차를 시작하면서는 도저히 마무리를 할 수 없었다. 모든 과목의 과제와 발제 양이 만만치 않았다.(비슷한 과정의 타 대학원 보다 이수해야 할 과목이 많은 커리큘럼을 가졌다.) 선배들이 왜 토할 것 같다고 했는지를 몸소 느꼈던 나의 대학원 생활을 돌아보면서 함께 생활했던 동기들에게는 기억되는 소중한 추억으로, 광운대 상담복지정책 대학원의 생활(상담심리치료 학과 전공)이 궁금한 이들에게는 조금이나 궁금증을 해소하는 글을 지면을 빌어 남기고자 한다.
2025년도 8월, 지난한 2년간의 상담대학원 석사과정이 마무리되었다. 9월에 바로 이이서 대학원 연구소의 인턴십 과정(광운대 상담복지정책대학원 광운상담전문가 인턴십 과정)을 연달아 시작해서 여전히 회사와 학교를 왔다 갔다 바쁜 나에게 남편은 ‘너 졸업한 거 아니었어?’라고 물으며 매주 간격으로 궁금해하는 중이긴 하다. 하지만 정말로 과제와 공부에 토할 것 같았던 지난 석사 2년 과정에 비할 건 못 되었다. 솔직히 아직도 내가 2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시간이 이렇게 순삭(순식간에 삭제)될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놀라는 중이다.
광운대 상복원(상담복지정책 대학원, 이하 '상복원')에 지원하게 된 이유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처음엔 타 대학원에 지원하였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러던 차에 나의 선배이자 멘토인 사촌언니(같은 상복원 선배님)의 권유로 광운대를 알게 되었다. 언니가 '우리 학교 와라. 우리 학교 좋아. 아, 그런데 공부는 토할 때까지 시키는 편이야.‘라고 말했을 때, 그때만 해도 난 왜 상복원이 좋은지, 왜 공부하다 토를 할 것 같은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단지 여전히 오랫동안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상담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만이 간절했을 뿐이다. 학사로 상담을 먼저 공부한 것도 나였고, 그 당시 영어 강사였던 언니에게 평생직장을 위해 상담공부를 권한 것도 나였다. 정작 나는 무엇 때문이지 몰라도 나서지도 못하면서, 나보다 먼저 험난 한 길을 척척 앞서가면서 가시덤불과 커다란 돌멩이들 사이를 헤쳐가는 그녀의 모습이 용기 있어 보였고 한없이 아름다워 보였으므로 나도 점차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 굳이 상복원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졸업한 지금 생각해 보자면 '상복원'이 아니었으면 어쩔뻔했냐는 거다. 열정이 가득한 교수님들의 강의와 진심 어리다 못해 애정이 가득했던 과제의 양, 늘 자기 것을 나누면서 옆 사람을 챙길 줄 알았던 우리 과 동기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과장 조금 해서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전교생이 모여서 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가족 청소년학과 교수님 말씀대로 지금 이대로 눈 감았다 뜨면 크리스마스 때라면서 그만큼 과정이 힘들고 바빠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셨지만 반대로 부족한 나를 학문적으로나 관계적으로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뜻으로 지금은 이해하고 싶다. 그것은 사실이니까.
3학차에 들어서면서 대상관계이론을 집중적으로(집중이란 단어를 쓰기엔 아직 학문의 깊이가 다소 얕긴 하지만) 공부하면서 매주 이론 이해 과제와 자기 분석(Reflection paper) 과제를 해내면서 나는 매주 노트북 앞에서 타이핑을 할 때마다 복받쳐오는 서러움과 어떤 슬픔과 분노 혹은 작은 깨달음들로 인해 하염없이 울곤 했었다. (그런 내게 남편은 ’너무 힘든 거 아니야? 휴학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가 내게 한소리씩 얻어듣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치열했던! 그리고 말 그대로 토할 것 같았던 지난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수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교수님께서 늘 ’ 남의 것 보지 말고 내 것을 보라.‘ 말씀하시곤 하셨는데 나를 돌아보는 과정을 가지지 못했다면 과연 우리가 내담자들을 이렇게 수련의 과정으로라도 만날 수 있었을까 하는 두려움이 인다. 그러한 점에서 교수님 말씀대로 우리 학교는 '상담 맛집'이 분명했다. 세상에 나아가 멋진 상담사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우리가 스스로를 무장할 수 있도록 때론 따뜻하게 때론 엄하게 다독이셨던 곳이 상복원이 아니었나 싶다.
대학원 과정을 통해 충족하고 싶은 욕구는 무엇이었는지?
거창할 것 무엇이겠는가.(브런치에 발행한 예전 글을 보니 대학원 입학 후 첫 과제가 '왜 상담사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과제였다.) 우리가 무엇이든 누구나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자 할 때는 좀 더 멋진 나가 되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것도 모르고 학창 시절을 지나, 직업을 구하느라고 숨이 가빴던 20대, 결혼하고 육아와 살림에, 직장에 남들 다 해내는 발달과업을 해치우다가, 누구라도 나이 마흔 중반쯤에 오면 더욱더 인생 2회 차는 내가 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속으로 이렇게 합리화를 하면서 대학원 면접을 보았던 것 같다. 이제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 쫌! 하자면서.
왜 이 학교를 선택했냐는 면접 질문에 '난초도 가장 힘겨울 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었는데(민 교수님은 기억 못 하시겠지. 근데 난 왜 이걸 기억하고 있는 거야.) 어떻게 보면 정말 힘들었던 2년이 우리에게 상담사로서 꽃을 피울 자양분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직장 생활 20년 만에 나는 좀 멋지게 살고 싶었고, 이왕이면 정말 오랜 시간 관심이 있었던 상담사면 좋겠고, 지금 당장 이걸 하지 않으면 다시 후회하게 될 거라는 남편의 말이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틀림없다. 상담사가 얼마나 멋진 직업인지는 지금은 온전히 알기 어렵지만(아니 얼마나 힘들지도 역시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면서 관여될 수 있고, 그러한 점이 나의 존재감에 무게를 더하고, 그러면서 사는 것이 좀 더 살 맛이 나면서도 의미도 있다면 그런 삶이야 말로 '좀 더 멋진' 나로 거듭날 수 있게 도와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대학원 과정에서 어떻게 노력했는지? 그 과정은 효과적이었나?
내가 한 노력이라 한다면, 그저 상복원의 잘 짜인 커리큘럼을 따라간 것이라 말하고 싶다. 상복원의 교육과정은 4학차 동안 우리가 배워야 할 과목들이 미리 선택되어서 우리가 따로 넣고 빼는 과정이 불필요한 점은 아마 다른 대학원과도 살짝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과정은 불필요하게 서로 다른 과목을 듣는다며 동기들과 헤어지지 않아도 되어서 오히려 결속력을 다지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상담맛집'답게 우리가 배워야 할 과목들은 잘 차려진 밥상처럼 상담가로서의 탄탄한 이론과 현장에서 행하게 될 실전 지식까지 동시에 겸비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각 학차별로 상담심리치료 학과의 교과 목을 정리해 본다면, 1학차에는 심리검사 및 진단, 발달심리, 이상심리, 상담이론과 실제를, 2학차에서는 상담기법, 집단상담, 가족상담, 상담통계분석을, 3학차에서는 고급상담이론, 기업상담(진로상담), 사이코 드라마, 상담연구방법론, 4학차에서는 아동청소년상담, 인지행동치료(문학치료), 집단상담실습, 상담사례실습 및 지도 등이 있다. 꼭 필요한 과목들이 학차별로 차근차근 설계가 되어 있는 데 현장에서 상담가로서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빌드업이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이 밖에도 매월 열리는 공개사례 발표회와 중요 상담이론과 트렌드를 반영한 콘퍼런스가 재학생이라면 무료이니 정말이지 공부할 마음만 가지고 식탁 앞으로 오면 되겠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노력이라고 한다면 잘 짜인 식단을 맛있게 소화만 하면 되는 일이다. 다만 나처럼 직장에 치여서 가끔 일주일에 두 번 연차 휴가를 사용하거나 유연근무제를 신청해 가며 학교에 가는 일이 부장님 눈치를 보느라고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고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벅찬 일이 되기도 했었다.(고3 딸 주려고 샀던 많은 영양제는 내 차지가 되었다는 건 안 비밀로 하겠다.) 아무도 내게 밤늦게까지 공부하라고 등 떠밀지 않았다는 점, 아무도 주말시간을 콘퍼런스니 발제준비로 반납하라고 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하며 내가 자초한 이상 더 이상은 노 빠꾸라며 자신을 다독이면서 버티곤 했다.
대학원 과정을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1학차 상담이론 시간에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난다. 대학원 2년 공부하고 졸업하면 뭐가 엄청 달라질 것 같은가? 금방이라도 전문가가 될 것 같은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우리들 기를 팍 죽여놓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하고 난 지금 이상하게도 자신감이 생긴다. 지금 상담 수련하는 기관에서 같은 팀 멤버였던 선생님은 다른 학교 졸업생이었는데, 항상 이론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하셨다. 뭔가 덜 배운 것 같은 아쉬움, 학교 때 차라리 조금 더 힘들게 공부했더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하셨을 때, 난 속으로 광운대인임이 자랑스러웠다. 특히 3학차 고급상담이론에서 대상관계이론을 집중적으로 배우게 된 점도 앞으로의 상담사가 되기 위해 여러 퀘스트를 깰 때마다 요긴하게 사용할 귀한 아이템이다. 공부할 때는 매주 과제를 해내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는데, 우리가 당시 힘들었던 게 맞는구나. 고작 2년 공부했다고 뭔가 확 바뀌진 않았을지라도 적어도 우리 마음에 효능감 정도는 심어 주셨구나 싶었다. 상담사가 되는 길은 어쩐지 무엇인가를 채울 때마다 부족한 나를 발견하게 되는 일이 아닌가 싶은데, 어차피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다면 미진한 부분은 앞으로 더 채우면 되지 않겠나 하는 자신감도 생겨난다. 이것이 달라진 점이 아닐까 싶다. 이 근거 있는 자신감 말이다.
그리고 진짜 달라진 점이라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좀 더 명확해졌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상복원에서 공부했던 시간은 솔직히 나를 지키는 시간이 되었었다. 불현듯 올라오는 일상에서의 외로운 마음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과의 괴로운 관계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힘이 되었다.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나의 에너지를 아끼게 되고, 보다 나를 위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많은 상담 이론들이 부족한 인간인 나를 들여다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차치하고도,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충만함, 이 공부가 나를 성장시키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 앞에 흐를 시간들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흐를 것이라는 확실하고도 기분 좋은 예감이 공부하는 내내 함께 했다. 사람의 운이 바뀌는 때는 우선 그 주변 사람들이 바뀔 때라고 하는데 이미 나의 운은 2년 전부터 틔였던 것이 아닐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 더 나만의 자율성을 발휘해도 되겠다고, 앞으로는 그리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광운대 교육 과정의 어떤 특성이 변화에 도움을 주었나?
대학원의 특별한 커리큘럼과 그것만이라도 잘 따라간다면 이미 절반은 한 것이나 다름이 없지만 상복원에 다니면서 내가 느낀 점이라면, 동문회라던가 원우회의 행사라든가 여러 가지 행사들이 자꾸 선배들을 헤쳐 모이게 하고 행여나 그럴 사람은 없지만 후배들 멀리 가지 말라고 끌어오게 한다는 점이다. 전 학차 모여서 따로 혹은 같이 하는 개강 총회와 종강 총회 등은 우리들로 하여금 상복원 소속이라는 점을 늘 일깨우고 자긍심을 가지게 도와주었던 것 같다. 바쁜 와중에도 늘 행사에 함께 참석하시는 교수님들도 우리가 '함께'였음을 느끼게 해 주시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동기들, 배움의 기쁨과 부족함 모두 함께 나누었던 어여쁜 동기들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가장 큰 보호요인이 아닐까 싶다. 상담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공감 능력과 배려심은 디폴트로 장착하신 게 아닌가 했던 따뜻함, 시험과 발표 때마다 서로 아낌없이 자료를 내어주고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 속에서 이 집단에서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 결국 나 스스로도 역량을 키워야겠구나 하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기도 했었다. 졸업 한 지금도 함께 성장하고자 서로를 챙기고 정보를 주고받게 되는 다정하고도 상냥한 동기들과의 인연에 항상 감사하다. 아, 그리고 너무나 인간적인 그래서 매력적인 우리 교수님들이 계시다. 밤 10시에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교수님들도 참 대단하다고 내심 생각했지만 늦은 밤 우리를 보시는 교수님들도 '너네 참 미쳤다.'라고 하시곤 했는데, 그 말씀이 너네 참 대단하다 혹은 기특하다로 들려서 그나마 참을 만했던 것 같다. 이런 긍정의 투사적 동일시! 가 가능하게 해 주신 분들이다. 모두의 과제에 코멘트를 달아주시는 과한 열정을 가진 분들이 계셔서 더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잘한다 잘한다 칭찬이 고팠던 점에서 아주 효과만점이었다.)
마지막으로, 토할 것 같다는 느낌이 대체 어떤 느낌이냐고 묻는다면, 늦은 밤 수업이 끝나는 시각이 밤 10시 40분 정도가 되는데, 뭔가는 더 먹을 수 없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배는 엄청 고프고 체력 소진이 다해서 극도로 피곤하지만 집은 가야 하기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날 수업에서 들은 엄청난 정보로 인해 이상하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인데 이런 걸 다 합하면 주로 나는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거나 뭔가 마음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게 있다면 집에 가서도 나의 뇌는 깨어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다는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것이 정상이다. 상복원인이라면 말이다. 긴 글을 쓰고 보니 힘들 때 진정 나를 꽃피울 힘이 생겨난다는 말은 진심으로 맞는 말 같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이제 막 '상담할 결심' 하신 분들... 광운대 상복복지정책대학원으로 오세요.
완벽한 커리큘럼과 유능한 교수님과 강사진에 애정 어린 많은 과제들, 그리고 그 과제들을 커버할 만한 능력 있고 다정한 동기들이 덤으로 생기는 광운대 상담원으로 드루와! 드루와!
당신을 더 아름답게 꽃 피우게 도와줄 거라고 장담합니다. 진짜로요!
에필로그 : 올해 2월에 오랜 투병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4학차를 견디어 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픔을 함께 나누어준 동기들이 있어서 대학원의 수학 시간들이 제게 더 특별하게 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해요. 상담이라는 막막한 항해를 이제 막 시작했지만 우리 함께 유연하게 출렁이면서 목적지로 향해가는 과정을 즐기도록 해보아요!
사진 출처: 네이버 '광운대학교'